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규정될 수 없는 인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2 조회수743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제1독서: 예레미야서 26,1-9  
복음: 마태오  13,54-58







성가정

Antolinez, Jose 작, 부다페스트 파인아트 미술관
성경 : 루카 복음서 2,40

 


     <규정될 수 없는 인간>

 오늘은 지난 6주 동안 파견을 나왔던 부제님이 자신의 본당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이 부제님이 처음에 저희 본당에 올 때는 제가 쉽지 않은 본당신부로 약간은 겁을 먹고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부제님이 오기 며칠 전에 제가 미리네 성지에 대리구 사제 모임이 있어서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 부제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제가 늦게 도착해서 부제님이 저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며칠 뒤, 저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부제님이 저에게 인사한다고 전화 왔을 때 왜 미리네 있을 때 인사하러 오지 않았느냐고 따졌습니다. 부제님은 저를 아는 주위 사람들이 제가 좋은 신부니까 편하게 지내다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가, 막상 통화하고 나니 겁을 먹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파견 나온 며칠간은 매우 부자연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쩌면 그런 선입관을 갖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선입관을 가져서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없음을 가르쳐주는 것도 부제교육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떠나려고 하는 지금은 부제님이 매우 편하게 지냈어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보다는 자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편하게 대해주어서 나중에는 자신이 버릇없는 행동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졌던 선입관을 깨는 데는 며칠간의 시간이 걸렸어야 했던 것입니다.

 

저도 신학생 때 유학을 마치고 처음 본당에 보좌신부로 가게 되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저에게 많은 분들이 저의 첫 신부생활에 만나게 될 주임신부님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물론 좋은 점보다는 조심해야 하는 점들을 더 많이 들어야 했고,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자신도 모르게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신부님을 마음속으로 판단하고 규정지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부님을 판단해 놓은 것은 오히려 저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두려워하게 되니 오히려 신부님께 부자연스럽게 대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오히려 제가 신부님께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서 그분과의 사이를 더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판단하고 규정지어 놓은 대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조금 살면서 신부님을 알아가다 보니 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 신부님과는 들어맞지 않는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판단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런 이야기들을 다 무시하고 그냥 판단하지 않고 신부님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더니 신부님은 아버지와 같이 참 좋으신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 때부터 관계가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부제님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먼저 선입관을 가지면 그 사람과는 그 선입관을 가진 만큼밖에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제님도 사제가 되어 보좌를 해야 할 텐데 그 때에는 사람들의 판단을 듣지 말고, 자신도 판단하지 말고 주임신부님과의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규정지어 놓으면 그것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이미 규정된 그 사람과만 관계를 맺으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겉도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 요셉의 아들로 규정지어 놓고는 그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메시아가 되실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되실 수 없으니 기적도 일으켜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큼밖에 되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는 끝까지 목수 요셉의 아들만큼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한 번은 하트모양의 귤 한 박스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귤이 자랄 때 하트모양의 틀 안에 귤을 자라게 하면 그 모양으로 귤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귤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닙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모양일 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넣으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틀은 나의 교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교만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짓고 또 그것을 그대로 믿어버립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식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무시하게 된다면 무시당한 상대는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상대를 무시하기 싶지 않더라도 이미 선입관을 지니고 있으면 그 판단된 정황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라 더 깊은 관계의 진전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인터넷에 강론을 올리기 시작할 때 어떤 사람은 고맙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인기 때문에 올린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하는 행위가 제 자신의 인기를 위해 하는 것처럼 저를 판단하고 규정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저는 그런 사람이고 그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상대를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판단되는 것보다 항상 크십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간도 인간이 규정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더 큽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