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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를 인도하신 주님
작성자이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3 조회수703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를 인도하신 주님 5

 늦게 까지 놓는 아이
나는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태어낫는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저녁이 되어 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집으로 가지? 나는 집으로 가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재미있다. 놀 때 내 마음은 참 기쁘다. 나는 놀지만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고 대신 일등을 해본 적은 없다. 대충 휙휙 모두 잘하지만 세밀하고 신중하고 계획성과 인내력을 요하는 일에는 약한 편이니 당연 일등을 할 수가 없다.

 목마른 사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상급 학교를 진학 할 수 없게 되었고 점점 나이가 들며 세상에는 기쁨과 행복을 주는 복락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함도 알게 되었고 이미 그러한 조건에서 멀리 비켜 있음도 알게 되었다. 기댈 곳 없는 나는 스스로 세상 복락을 끌어안기 에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용기를 잃고 말았다. 희망을 잃어버린 나는 더욱 기쁨이 필요했다. 기쁨만이 나의 생명이며 내면 깊숙한 곳에서 끝없이 솟구치는 기쁨에 대한 갈망은 그치질 않았다. 지금 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면 못할 일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난 갈증이 심한 목마른 자다. 굶주린 개가 쓰레기통을 뒤지듯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상한음식도 마다않고 삼키듯 나는 왜? 이렇게 목이마른자일까?

 중독증세
그렇게 순간순간 목을 축이는 세상의 기쁨은 나의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곧바로 채워줘야 하는 피로감 허전함 후유증세가 따라오며 영원할 수 없음으로 또다시 기쁨을 찾는 갈증으로 남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랑받기위하여 태어났다고 하지만 기쁨이 없다면 어떨까? 이 기쁨을 위하여 건전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 이가 있는 반면 나와 같이 불건전한 방법이나 생각으로 기쁨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중독자라고 부른다. 그들 안에는 평화와 기쁨이 없는 치유의 대상자들이다. 오늘 또다시 밤새워 당구를 쳤다. 끝없는 자존심 대결, 승리의 기쁨은 내일 일의 중요함보다 지금 나를 살려내는 힘이었다. 오늘 밤샘 당구 게임은 내 자존심과 승리의 기쁨을 충분히 살려낸 어두운 밤이었다. 피곤하지만 모처럼 기분 좋게 당구장을 나섰다.

 이상한 기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슴푸레한 새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게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듯, 밤새 무었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에 나는 큰길을 버리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앞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지만 내 마음이 다 드러나는 듯 초라하고 죄스러움을 강하게 느끼며 집으로 신속하게 돌아왔다. 밤새 기다리다 지쳐 잠자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보며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책과 후회 내게 이런 양심이 남아있었나? 나는 내게 당면한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무능력한 자신을 감추고, 잊으려 현실을 도피하고 빈 마음에 기쁨을 채우려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것이다. 정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앞날이 캄캄했다. 모든 조건이 일어설 가망이 없었다. 내일을 버린 지 벌써 오래다. 하지만 저기 내면 깊은 어두운 곳에서 그래도 살아야한다, 그래도 살아야한다는 책임감이 용기와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척사대회 일등
얼마 후 성당 척사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척사대회? 노는 일이라면 기쁜 일이 아닌가? 그리고 막걸리? 그래, 성당에 가자! 냉담자의 부끄러움을 외면한 채 윷놀이에 참석하고 그날 나는 장원을 하였다. 어떠한 일이나 일등은 쉬운 일이 아닌데 웬, 복이 나한테 있단 말인가? 상품을 갖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풀어 보았다. 내심 자랑스럽고 기대가 컸다. 기대는 실망이었다. 일등이 고작 조그마한 십자고상이라니! 어처구니없는 냉담자의 씁쓸함만 느꼈다. 나는 이렇게 주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십자가를 통한 구원메시지를 내 손에 쥐어 주었음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느끼지도 못하는 귀머거리며 장님이 되어있었다. 오! 얼마나 불쌍한 영혼인가?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나는 냉담을 풀고 새로 나온 신자가 되었다.

 진리 안에서 찾은 영원한 기쁨
새로 시작한 신앙생활은 내가 너무도 멀리 떠나간 탕자였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안착한 듯 했지만 낯설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달려 떠낫던 자리를 지나 앞서간 이들의 뒤를 따라 열심히, 열심히 달렸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양팔을 벌려 안아 주셨고 성경에 나오는 탕자와 같이 영으로 새 옷을 갈아입히시고 목마르지 않는 샘솟는 물, 성령으로 가득 채워 주셨다. 나는 이제 세상의 기쁨에 목마르지 않다. 나는 예수님의 기쁨으로 행복하고 완전한 희망과 믿음 사랑으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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