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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세 살이니까 쌀 세 되만 지고 갈게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4 조회수620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 가정의 기둥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큰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한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가정의 수호천사라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다. 세 살이니까 쌀 세 되만 지고 갈게

아버지는 마침내 17년 만에 돌아온 고향을 버리고 가 족들의 안전을 위해 일단 집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 일곱 식구는 소 달구지에 먹을 것과 이불과 옷가지들을 싣고 큰집 식구들과 함께 안 산을 향해 떠났다. 홍신리를 벗어나 큰 도로에 이르면서 우리는 상 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마다 피난 행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손을 잡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짝 따라갔지만, 한번 인파에 휩쓸리 면 순식간에 가족들의 행방이 묘연해질 수도 있었다. 훗날 수많은 전쟁고아가 발생한 것은 부모나 보호자를 잃은 고아도 많지만, 피난 길에 가족들이 손을 놓치고 뿔뿔이 헤어져 찾지 못한 경우도 많다. 흥신리에서 나올 때는 좁은 도로였으나 새로 난 큰 도로에서는 오 히려 적의 눈에 쉽게 띄어 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우리는 우선 아버지가 평소에 소장사를 하면서 익혀 둔 한적한 길을 따라 인천 우시장이 서던 곳으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호우누 님은 열여덟 살, 호순누님은 열여섯 살, 그리고 세 살 터울씩인 완우 형님과 창우 형님은 모두 작은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나는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한 채 편안하게 어머니 등에 업힌 세 살배기 아 기로 피난길에 나섰다. "엄마, 누나와 형들만 짐을 주고 왜 나는 안 주는 거야? 나도 짐 들고 걸어갈래." 그처럼 경황없는 중에도 등에 업혀 있던 세 살 꼬마가 뜬금없이 하는 말에 어머니는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조용히 대꾸하 셨다고 한다. "그럼, 우리 찬우는 뭘 들고 가고 싶은데?" "어른들은 힘이 세니까 많이 들고, 나는 세 살이니까 쌀 세 되만 지고 갈 거야." 어머니는 등에 업힌 막내아들의 말에 빙그레 웃었고, 묵묵히 발걸 음만 재촉하던 어른들도 크게 웃었다. 물론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 이 없지만, 훗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크게 웃었다. 내가 들어도 대견스러운 말을 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어머니는 그때 내 가 크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네가 피난길에 그런 말을 했단다. 글쎄, 쌀 세 되라도 지고 가겠 다니!" 어머니는 세 살배기의 옹알이 같은 한 마디도 잊지 않고 잘 기억 하고 계시다가 나중에 내게 모두 들려 주었다. 내가 가족들과 함께 짐을 나누어 지고 싶어하는 말을 듣고 자식의 앞날을 가늠하신 어머 니의 마음도 참으로 깊었다. "어린 네가 무슨 생각이 있어 그런 말을 했겠느냐마는, 그때 네 말 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단다." 어머니는 그후에도 나의 어린 시적의 언행을 하나도 잊지 않고 꼬 박꼬박 가슴속에 접어 두었다가 두고두고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때마다 행복해하셨다. 우리 일행은 밤새 이틀을 걸어 겨우 인천에 도착했다. 하지만 인 천도 사정은 똑같았다. 천지가 피난민 행렬뿐이었다. 그들은 빈집 에서 밤이슬을 피해 선잠을 자고, 다음 날 먼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다시 피난길을 떠나는 식이었다. 그러니 묵을 잠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세 살배기 나를 빼 면 나머지 형제들은 제 앞가림은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짐을 지고 밤낮을 걷는 피난길에 지치지 않을 리 없었다. 계속 되는 강행군에 다리가 아프다고 배가 고프다고 엄마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어르고 달래며 주안의 긴 염전 둑을 따라 신천리 배내 장터에 겨우 도착했다.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던 우시장 근처였기에 주변 상황에 밝아서 찾아간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버지가 평소에 안면이 있던 집들은 이미 피난을 떠나고 없었고, 그 집은 이미 다른 곳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간신히 부엌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살배기 아기가 있어 그나마 양보를 받아 낸 자리였다. 다른 식구들은 마당 한구석 에 겨우 자리를 잡고 하늘을 지붕 삼아 잠들어야 했다. 호우누님과 호순누님은 조금이라도 한기를 줄이기 위해 수수깡을 주워 바닥에 깔고 짚을 덮고 잠을 청했다. 한참 자다가 추워서 눈을 떠 보면 덮고 있던 볏짚들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남이 덮고 자는 볏짚마저 몰래 훔쳐갔다. 불과 며칠 사이 에 세상이 뒤바뀌면서 사람들의 인심도 흉흉하게 돌변한 것이다. 전 쟁은 이렇게 사람들을 각박하고 살벌하게 만들고 있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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