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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6 조회수804 추천수9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 가정의 기둥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큰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한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가정의 수호천사라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

교육학자들은 자녀교육의 기본틀이 유치원 시기에 대부분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자녀교육은 태교부 터 시작하여 6,7세에 이르면 골격이 갖추어진다는 것이다. 그후 아 이는 마치 씨앗이 텃밭에 뿌리를 내린 다음 싹을 틔우는 것처럼 그 틀 속에서 정신적 성장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래서 태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유치원 교육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 교육적 이론이 밝혀지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 세대들도 아기 를 가지면 몸과 마음의 정결을 지켰고, 떡잎은 세 살 때부터 알아본 다는 말도 있듯이 아주 이른 시기에 자녀들의 미래를 예측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기도를 통해 모태 신 앙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신앙교육 은 그야말로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 주신 살아 있는 증인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사기도를 가장 기쁘게 받으신다 는 것을 아셨던 것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 랐고, 그래서 어머니가 하는 일은 하느님이 도와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시니, 어머니는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밭일에 집안일도 벅차고 다섯 남매를 거 두기도 바쁜 터에 어머니는 사업에까지 손을 대었다. 말이 사업이지 사실은 음식솜씨가 좋은 어머니가 밑바찬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 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반찬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어머니 밑반찬이 맛있고 정갈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입소문은 주부들 사이에 금세 퍼진 다. '어디서 파는 밑반찬이 깔끔하고 맛있다' 는 소문이 나면서 잔칫 상 음식 주문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반찬 장사에 뛰어든 지 일 년 만에 어머니는 꽤 돈을 모았다. 그래 서 집안 사정도 많이 나아졌고 아버지의 노름빚도 거의 갚게 되었 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아주 작게 시작한 사소한 반찬가게 가 성업을 이룬 것은 어머니의 손맛도 있었지만, 나는 매사에 정성 을 다하는 어머니의 노력에 보답을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고생하여 집안 살림이 다소 넉넉해지자 한동안 뜸하던 아버지의 병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일거리가 줄어드는 농 한기가 되자 어버지는 다시 노름판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번 도박에 빠진 사람은 여간해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노름꾼들은 급하면 집만 잡히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 도 잡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병은 지독하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가 고생 고생해서 번 돈을 장롱 속에서 몰래 빼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그야말로 뼈빠지게 번 돈은 아버지의 도 박과 유흥비로 슬금슬금 새어나갔다. 물론 아버지는 그 돈을 어머 니가 어떻게 번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유혹에 빠져든 후에는 좀처럼 헤어날 줄을 몰랐다.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으니 병인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어머니의 숨겨 둔 돈만 빼낸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우리 집과 논밭을 다 잡혀서 날려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큰 빚마저 지고 말았다. 빚쟁이들이 집안에 들이닥쳐 난장판을 만들고 기르던 돼지마저 빼앗아 갔던 옛 악몽이 다시 재현된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나는 아버지에게 노름빚을 빌려 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신발을 신은 채 무법자처럼 남의 집 안방까지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겁에 질려 있었고, 그들은 집안 에 있는 쓸 만한 것은 다 쓸어갔다. 벽에 걸린 시계마저도 떼어 갔다. 우리 집에 들이닥친 사람 중에는 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는 부자 도 있었다. 그런 부자들도 돈에는 눈이 뒤집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횡포에 격분했지만 그들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날 어머니의 모습은 그 전에 빚쟁이들이 빼앗아 간 돼지를 되찾 아 오던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들이 집안을 쑥대밭 처럼 휩쓸고 있을 때에도 한쪽 마당에 잠자코 선 채 지긋이 지켜보 고만 있었다. 그리고 흥분한 내게 조용히 말했다. "찬우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는 바로 남의 돈을 거저먹으려 드는 사람이다. 노름꾼들이 바로 남의 돈 거저먹으려는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 집에 와서 저러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것은 저 사람들이 아니라 남의 돈을 거저먹으려 했던 우리가 잘못한 탓이다. 저 사람들은 자기 돈을 받으러 왔다가 못 받게 되자 화가 나서 저러는 것인데, 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 아니 겠니. 그러니 너희 아버지가 바보고 나쁜 사람인데 누굴 탓하겠느 냐." 어머니는 무자비한 빚쟁이들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심 지어는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도 낮에 빚쟁이들이 다녀갔다는 말 한 마디만 전했을 뿐, 그들이 집안을 어떻게 해놓고 갔다거나 어떤 일 이 벌어졌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잘못은 곧 우리 잘못이고, 우리가 잘못했기에 그들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아버지는 어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노름꾼들이 우리 집을 어 떻게 들쑤셔 놓고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도 입을 다 물고 계셨다. 내가 그때 놀란 것은 그런 험한 꼴을 당하고도 어머니 는 조금도 동요됨 없이 꿋꿋하게 견디고, 아무에게도 원망하거나 노 하거나 큰 소리 한 마디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의 돈을 거저먹으려 했던 우리가 잘못한 탓이다." 그때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하나의 교훈으 로 선연하게 남아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도박과 관련된 것은 철저히 피했다. 남의 돈은 십원 한 장이라도 거저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제가 된 후에도 장난으로라도 돈을 걸고 하는 화투 놀이나 게임은 일절 피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어울려야 하는 경우 라도 시늉만 하고 물러나 앉곤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잡기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내 마음의 배려이기도 했고, 그런 일로 마 음속에 깊은 상처를 받고도 혼자 감내하며 스스로 치유하려 했던 어 머니에 대한 나와의 약속이자 사랑의 표시였다.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는 그렇게 평생을 걸쳐 나의 삶의 교훈이자 지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 모든 상황을 받아 들이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반찬 장사에 이어 그릇 장 사도 나날이 잘 되었고, 나중에는 피륙 장사로 품목을 바꾸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없는 경고 속에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도박판 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노름빚을 또박또박 갚아 주 었고, 얼마간 도박판에 안 나가시다가도 어머니가 노름빚을 다 갚을 만하면 또 다른 노름판에서 일을 벌였다. 그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면서도 아버지는 고된 노동의 수고를 통 해서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 주는 어머니의 기도생활을 왜 애써 외면 하기만 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어떤 가난과 역경도 어머니의 영혼을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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