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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의 스캔들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7 조회수679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모성애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본능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 가정의 기둥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큰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한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가정의 수호천사라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다. 아버지의 스캔들

남녀가 성인이 되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 를 낳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다. 또 그 자녀가 커서 다시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세상의 이치는 하느님이 정해 준 삶의 과정이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2, 2)라는 성경 말씀처럼, 특히 자녀를 기르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결혼생활에서 사랑은 가정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 래서 혼인서약에서 사제는 늘 혼약자들에게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 을 사람이 풀지 못하며, 혼인의 제정자이시며 두 사람을 맺어 주신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두 사람을 지켜 주고 그 결합을 굳건히 해 주 심을 기도한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는 인연이지만, 그 인연을 지키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내력이 부족해진 것인지,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부모 님은 노년에 간혹 티격태격하시긴 했지만 언제 보아도 흐뭇하고 다 정한 부부였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결혼생활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 얻은 행복이었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우리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누가 보아도 깨질 수밖에 없는 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정인(情人)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소장사를 하면서 전국의 우시장을 돌아다녔다. 그 중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수원 우시장에 자주 가셨는데, 지금은 교통편 이 좋아서 가까운 편이지만 당시만 해도 수원은 꽤 먼 곳이었다. 아버지는 한번 우시장에 가시면 하룻밤은 기본으로 외박을 해야 하고, 우시장이 파할 때까지 머물다 오시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 니 자주 드나드는 숙박업소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하필 숙박업소 주인이 남편 없이 혼자 사는 40대 여자였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자꾸 보면 정이 든다는데, 우시장이 설 때마 다 아버지가 그 여관에 머무르다 보니 어지어찌하다가 여주인과 가 까운 사이가 되었다. 늘 집안일에만 골몰하시던 어머니였지만 남편 의 수원 출입이 그저 우시장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눈치를 채고 계셨다. 여자만의 본능적인 직감도 있었고, 아버지가 그런 의 심을 받을 맘한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아버지는 우시장 근처에서 며칠을 묵고 오시는데 한복이 한 번도 후줄근한 적이 없고, 주름 하나 없이 매번 말쑥했다. 당시는 세탁소 가 특별히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아버지의 한복은 며칠이 지나도 정갈하기만 했을까. 그것은 아버지가 깔끔하게 입으신 것이 아니라 한복을 손질해 주는 다른 사람이 있엇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머니 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가 얼마 나 마음이 아팠을지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문제의 그 여관 주인여자가 우리 집 근처까지 올 일이 생겼고, 어쩌다가 그 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어머니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보통의 경우라면 우리가 드라 마에서 보는 것처럼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였거나, 아니면 그 여인을 만나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남의 남편을 부 추기다 못해 이제는 남의 집 안방까지 엿볼 작정이냐고 드잡이를 하 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인을 정중하게 집에 불러들여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고 잠자리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 바깥어른이 우시장에 가실 때마다 따뜻한 식사도 해 주고 한복도 깔끔하게 입도록 해 주고, 그처럼 잘 챙겨 주신다는 말을 듣 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일부러 찾아가서 감사드리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멀리 오셨는데 편하게 쉬다 가셔야지요." 어쨌거나 그 여인이 우리 집 가까이 왔을 때는 여간 단단한 마음 을 먹고 온 것이 아닐 텐데, 어머니의 친절한 대접을 받고는 당황해 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여인을 붙잡았다. "기왕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우리 집이 어떻게 사는지 소상히 알 고 가시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하룻밤으로는 부족하니 더 묵어 가시 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여인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저한테 왜 잘해 주시는 거죠?" "이게 다 내 팔자고 당신 팔자인데 어쩌겠소." 어머니는 현실을 분명히 운명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 히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그 여인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가 엾게 여기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 로 그 여인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니었다. 객지의 아버지를 돌보 아 준 여인을 진심으로 대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여인은 어머니가 손수 차려 주신 밥상 앞에서 감격했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여인은 이런 마음씨 고운 안방마님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후 아버지 곁을 완전히 떠 났다. 아버지의 정인 사건은 어머니에게 큰 상처였지만 어머니는 참 으로 지혜롭게 극복하였고, 그 이후 아버지 역시 그런 일로 어머니 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 사건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거론된 적이 있는데, 1996년 3 월 31일, M방송국에서 방영한TV 회혼식에서 두 분의 마음을 확 인한 적이 있다. 당시 M방송국에서는 매주 각 지방을 순회하며 군 민을 위한 공연과 함께 그 지방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노년기를 행 복하게 보내는 부부와 그 가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는 부모님의 결혼 60주년 회혼식을 양곡성당에서 조촐하게 치러 드린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공개방송이 있기 며칠 전 방송국 에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하여 두 분의 사는 모습을 취재하고 지난 추억들이 담긴 사진첩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어 갔다. 공개방송이 있던 날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우리 부모님은 옛날 결혼 풍습대로 아버지는 사모관대 차림으로, 어머니는 족두리 에 연지 곤지를 찍은 새색시 차림으로, 꽃가마를 타고 입장을 했다. 가족들은 두 분이 타신 꽃가마 뒤를 따라 입장하였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영감님, 듣자하니 젊으셨을 때 소장사 하시면서 수원에 현지처를 두고 왕래하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때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요. 그러나 그때는 제가 돈도 있고, 인물도 있고, 그래서 잠시 객기를 부려 본 거죠." "마나님한테 들키면 쫓겨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그런 생각 아주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잠깐 바람을 피 우고 곧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게 꼬리가 잡힌 거예요." 사회자가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그런 생활을 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생각이 많았지. 하지만 남자들은 한때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여자 가 정신 차리고 가정과 자식들을 확실히 지키고 있으면 남자는 반드 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아버지는 그 일을 청산하셨고, 집안은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그때 방송국에서 출연기념으로 제주도 왕복 비행기표와 숙 박권을 제공했는데, 부모님은 그 전 해에 다녀오셨다고 그것을 다른 분에게 드렸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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