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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액 면제 장학생의 눈물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09 조회수584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처음에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쓰셨는데, 남에게 대필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서 독학으로 글을 익혀 편지를 쓰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은 너무 소중하고 고마웠다.
사제의 어머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우리 찬우를 사제로 만들어 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액 면제 장학생의 눈물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극진하셨다. 어느 어머니든 막내에 대한 내리사랑은 똑같겠지만, 나는 특히 어린 시절 에 몸이 약해서 어머니에게 더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다. 게다가 다 른 형제들에 비해 가정형편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어머니의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더 애틋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지붕 아래 다섯 남매가 함께 사는 동안 속상하는 일도 무척 많 았을 법한데,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가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으 셨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얼굴을 붉히며 야단을 치시기보 다는 먼저 조용한 말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스스로 깨 닫고 반성하게 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 형제들은 자라면서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지 않 았던 것 같다. 내가 언제 형제들과 싸우고 다투었는지 애써 생각해 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님들도 우리 형제들은 유난히 화목하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나 역시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면 그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한번은 밖에서 뛰어놀다가 옷이 더러워졌는데 어머니가 힘들게 빨래하시는 것을 보고 그후에는 아이들이 길목에서 땅에 뒹굴며 놀 아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머니에게 야단 맞을까 봐서 가 아니라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머니의 사랑으 로 조금 일찍 철이 들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착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 터 공부에 재미를 느껴 방과후에도 바로 집으로 와서 숙제를 하고 다음날 배울 것을 예습하고 나서야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찬우야, 이제 공부 그만하고 밖에 나가서 놀아라!" 어머니가 공부 그만하고 나가서 놀라고 해도 나는 "조금만 더 하 고 놀게요" 하면서 책을 놓지 않았다. 저녁에도 늦게까지 공부를 하 고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일찍 일어나 아궁이 불 때는 일을 도와 드리곤 했다. 그러다가 학교 갈 시간이 조금 이르 다 싶으면 또 책을 읽었다. 공부가 재미있고, 어머니가 공부보다 나가서 놀라고 할 정도였으 니 학교 성적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학창시절에 받 은 상장과 성적표를 잘 보관하셨다가 수시로 꺼내 보여 주곤 했다. "엄마가 힘들어도 우리 찬우가 이렇게 공부 잘하는 걸 보면 절로 힘이 나는구나."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막내아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셨다. 그것이 매일 힘든 장사를 하시면서도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힘이 되어 드렸던 것처럼 어머니도 나에게는 공 부를 잘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좋은 성적을 받아서 어머니를 기 쁘게 해 드려야지 하고 생각할 때, 어머니는 한 푼이라도 벌어서 우 리 막내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나와 어머니의 말 없는 약속이었다. 그런 탓에 나는 학교에 내야 하는 학급비라든가 수업시간에 필요 한 준비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한테 돈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서 혼자 끙끙 앓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머니가 고생해서 번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 "너 학급비 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니?" 하고 먼저 묻곤 하셨다. 내가 돈이 필요해도 말을 안 하자, 어머니는 우리 반 친구를 찾아 가 요즘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학급비는 언제까지 내야 하고 얼마인지 손수 물어서 해결해 주시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장하금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중학교에는 매 학기마다 장학생을 선발해서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면 소재지에 있는 양곡중학교에 원서를 내고 입학시험을 치렀다. 초등학교 성적이 좋았으니까 입학 성적이 좋을 것을 기대했고, 내심으로는 전액 면제 장학생을 기대하 고 있었다. 그러나 합격자 발표하는 날 학교에 가서 성적 결과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전액 면제 장학생 1명과 반액 면제 장학생 2명이 발표되 었는데, 나는 기대와는 달리 반액 면제 장학생 명단에 올라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다른 사람들은 합격 여부에 울고 웃 는데, 나는 전액을 받지 못한 낙심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부모님이 실망하 시지 않을까, 특히 고생하시는 어머니 짐을 덜어 드리지 못해서 어 쩌나,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는 깜 짝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찬우야. 네가 설마---." 어머니는 그때 내가 시험에 낙방해서 우는 줄로 알았던 것 같았 다. 초등학교 전교 수석이 설마 떨어진 것은 아닐 텐데, 무슨 큰 실 수라도 저질러서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놀란 것은 당 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날 안으시더니 눈물을 닦아 주면서 내가 울음을 그치자 자초지종을 물었다. "수석으로 합격해서 전액 장학금을 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 어요." 그 말에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래, 네가 실력을 너무 믿었기 때문에 실망이 컸던 게로구나. 하 지만 합격했으니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 바보처럼 울긴." 나는 어머니의 말에 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게 돈 버는 어머 니에게 등록금 부담을 덜어 드리지 못한 죄책감은 너무 컸다. 나는 어머니에게 죄송했고, 내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는 자책감에 슬펐다.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겉으로 내색 하지 않던 내가 크게 우는 것이 안쓰러웠던지 계속 달래기만 했다. "하지만 2등을 해서 반액 면제는 받았어요." 내 말에 어머니는 크게 놀라며 이번에는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장하다, 우리 막내. 180명 중에 2등을 했는데 그게 어디 울 일이 냐. 엄마는 너무 좋고 네가 자랑스럽다. 어디 보자, 우리 막내." 내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금세 슬픔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를 더욱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중학교에 들어가서 보 자, 기회는 남았다. 그런 생각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후 나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다음 학기에는 전교 수석을 차지해 전액 면제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중학 교 3년 6학기 중에 3학기는 장학생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고 공부했 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던 힘은 공부가 재미있기는 했지 만, 그것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이 물려 주신 명석한 두뇌 덕분이었다. 그러니 공부 잘한 것도 부모님 덕이 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막내에 대한 굳은 믿음이 나를 분발시킨 동 력이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의 뒷바라지도 컸지만 내게는 '가난' 이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만일 우리 집이 부자였다면 그런 힘과 용기가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하느님이 가난한 어머 니와 나를 어떤 길로 인도하시려고 했는지, 그 뜻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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