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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 버림의 자아에 결박된 영혼 [죽음의 신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0 조회수347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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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이 가르침에 대하여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죽는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문 일입니다.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설령 모든 것들을 버린다고 하여도 자기 자신만큼은 버리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버린다 하여도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면 완전한 버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버림에 대해 '자기 힘으로' 할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불교의 수도승 처럼 행세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버림(비움)'의 종교가 아닙니다. 착각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자기를 버리겠다는 그 자아의 집착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은 도저히 자신을 버리지(비우지) 못합니다.

<자기를 버리겠다는 자아>가 강렬하게 자기 안에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비울 수가 있을까요. 자기를 비우겠다는 자아 마저도 없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버림'은 '자아 없앰'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와 같습니다.

자신을 비우겠다는 것이 '자기가 죽는다'는 의미를 머리로서는 알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죽는다'고 하는 이 "죽음의 신비"는 자기 힘으로 되어 지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수도승 처럼 '버림의 자아에 결박된 영혼'들은 아주 많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사랑이 왔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왔습니다.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하느님에게서 오는 '이 사랑'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위로부터 오는 천상의 것으로 지상의 어둠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자기 버림은 천상의 사랑으로 자기 안에 '이 사랑'을 채워 자신을 버려야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이는 사람의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결코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힘에 의탁하지 않으면, 자기 밀알은 자기를 비우고자 하는 '숨겨진 자아'에 단단히 결박되어 스스로 도무지 죽지 못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힘에 의해서 '이 사랑'이 자기 안에 채워지면서 비로소 자신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힘에 관한 말의 뜻을 의미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사랑'에 관하여 교리서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458 ‘말씀’은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생명
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말씀’은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교리서)-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같이 "말씀을 받은 이들" 또한 자신을 내어 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어집니다. 자기를 버리고 나서 그 다음에 사랑을 행동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방식이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닌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준자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말씀)을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방식이 하느님의 진리가 아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버림의 종교'가 아니고, '자신을 내어 주는 종교'인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자기 버림의 피안의 종교가 아닌, 예수님을 따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 사랑'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로의 참여, 이를 "신화"라고 교부들은 일찍부터 가르쳐 왔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섬기는(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참으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성부께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에서 이렇게 명하신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참으로 그분께서는 참행복의 모범이시며, 새 율법의 기준이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이 사랑에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 실제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교리서 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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