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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불이 작아서 발이 나와요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2 조회수537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처음에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쓰셨는데, 남에게 대필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서 독학으로 글을 익혀 편지를 쓰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은 너무 소중하고 고마웠다.
사제의 어머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우리 찬우를 사제로 만들어 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불이 작아서 발이 나와요

소신학교 생활은 평범했지만 수많은 추억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된 소중한 시기였다. 처음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학 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다소 부담이 되기도 했다. 특히 온돌방에 서만 살다가 침대생활을 하면서 적응이 힘들기도 했다. 침대에서 굴 러떨어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아닌 척했지만, 그 시절엔 침대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터라 그런 일을 겪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느 날 밤에는 여기저기서 쿵쿵 떨어지는 소리가 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입학 후 몇 달이 지나자 점차 적응이 되었다. 침대 사용으로 불편한 일은 또 있었다. 아들이 신학교 기숙사에서 덮을 이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당연히 방바닥에 까는 솜이불을 준비해 주셨다. 나도 침대는 처음이어서 별 도리가 없었 다. 솜이불은 두께 때문에 침대 옆과 밑으로 접어 넣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마련해 주신 이불이어서 다시 해 달라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제대로 침대에 맞는 이 불을 만들어 온 친구도 있었지만,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어서 나처 럼 두꺼운 솜이불을 억지로 꾸겨 넣어 쓰는 학생도 많았다. 그렇게 소신학교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솜이불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변함없 이 내 잠자리를 지켜 주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내 키가 훌쩍 커버렸다. 대학교 1학년 때는 173센티미터나 되었다. 그래서 자다 보면 이불 밖으로 발이 나오기 일쑤였다. 웅크리고 자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머니 에게 편지로 말씀을 드릴까 말까, 그것이 매일 밤 내가 겪는 고민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 신학대학에서 축제가 있었다. 그날은 가족들이 학교에 올 수 있었는데, 어머니와 큰 누님이 기숙사를 찾아오셨다. 나는 기 회다 싶어서 어머니에게 이불이 작으니 큰 이불을 하나 만들어 달라 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침대에 잘 정돈되어 있는 이불을 보시더니 이렇게 대답 하셨다. "아직 새 것이니까 사제서품 받으면 그때 해 주마." 그래서 나는 잘 때 발이 나온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다시 한번 입 을 떼었다. "어머니, 사제품을 받으면 이불은 본당에서 해 준대요." 게다가 나는 아직 군대도 다녀와야 하고 사제품을 받으려면 5년 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내 불쌍한 발은 이불 밖에서 찬바람을 맞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리 멀쩡한 것을---." 어머니는 새 이불인데 아깝다는 듯이 여러 번 망설이더니 그저 휘 휘 둘러만 보실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 누님 이 나서서 이불을 해 주겠다고 하여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항상 작 은 것 하나, 헌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아껴 쓰시던 어머니와 아들에 게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어머니와의 내면 싸움에서 결국 검소한 어머니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모든 어머니가 다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도 무척 알뜰하셨다. 어머 니가 보시기에 집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버릴 것 없이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쓸모가 없어 버려야 할 물건도 고물장수 한테 넘겨 성냥 몇 갑이나 강냉이 몇 사발과 바꾸어 먹어야 비로소 직성이 풀리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직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희미한 등잔불이나 유리 호야를 씌운 남포등을 켰고, 책 상 앞에서 공부를 하려면 촛불을 하나 더 켜야 제대로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1964년에 동네에 전기불이 들어왔 다. 전등 하나로 방이 환해져서 좋기는 했지만 시골 사람들에게 전 기요금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희미한 30촉짜리 백열등을 달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전기를 아끼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는데, 전기를 켜고 끌 때 전력소비가 많이 된다고 해서 전기용품을 사용할 때 잠 시 껐다가 다시 켜야 할 상황이면 오히려 끄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절약이 된다고 하였다. 어머니도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 저녁에 짧은 기도를 드 릴 때는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줄여 놓거나, 텔레비전을 끄지 않고 소리는 줄이고 화면은 수건으로 가려놓았다. 신앙생활과 절약생활 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어머니만의 묘책이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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