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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8.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2 조회수43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2.8.12 연중 제19주일 열왕기 상19,4-8 에페4,30-5.2 요한6,41-51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강론 제목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제 두 번 째 책 제목이자

20년 전 본원에서 종신서원을 앞둔 형제들의 피정 지도 후

미사 때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한 번 뿐이 없는

소중한 삶을 보람차게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허무한 삶이 아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어느 50대 말 형제와의 대화 중

형제의 열정이 참 경이로워 잊혀 지지 않습니다.


10년 전부터 매해 아마추어들의 3종 경기에 출전했다 합니다.

6월에도 제주에서 열려 참석했고

9월에는 여주에서 열리는데 여기에 참석할 예정이라 합니다.

수영3km, 자전거 140km, 마라톤 20km 정도의 세 경기를 끝내니

무려 11시간이 넘었다 합니다.


그 작은 체구에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지 신기하여 물어 봤습니다.

 


“한 번 해보니 할 수 있더라고요.

  전국에서 400-500명 쯤 모이는 데

  이 중에는 60대도 있고, 70대도 있고, 또 80대도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열정입니다.

부인만은 자신의 이런 열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열정 있으면 하느님 찾는 데 쓰라고 하기에

이제부턴 성당 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합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 하느님 심어주신 무한한 열정입니다.

이 열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찾으라고 주어진 열정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요,

하느님께 선사 받은 열정이니

하느님을 찾는 열정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입니다.

 


광야인생의 궁극 목적지인 하느님을 잊어 방황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열정 탓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참 중요한 평생 일이 하느님을 찾는 일입니다.


오늘 열왕기 상권의 하느님의 산, 호렙을 향한 여정 중의 엘리야가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의 모범입니다.

 


그대로 오늘 1독서의 장면은 하느님을 찾는 인생여정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외롭고 힘든 광야 인생여정이요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죽기를 간청하여 드리는 엘리야의 기도가 참 절실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다보면 때로,

되는 대로 막살고 싶은 자포자기의 유혹이 들 때도 있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자살 충동을 겪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엘리야처럼 즉시 기도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여 필요한 도움을 준 주님의 천사입니다.

엘리야뿐 아니라 누구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인 수호천사입니다.

 

기도할 때 더욱 생생히 느끼는 수호천사요

하느님을 찾는 열정도 다시 살아납니다.

하느님을 찾는 일에 기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여 끊임없이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오늘 화답송 시편 마지막 구절이 참 은혜롭습니다.

그대로 엘리야의 경우에 들어맞습니다.

 

광야여정 중

잠시 멈추어 주님을 바라보는 관상기도의 미사에 초대하신 주님이십니다.

하여 우리는 기쁨이 넘치고 우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 영육이 충전된 엘리야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마침내 목적지인 하느님의 산 호렙에 도달함으로

성공적으로 순례여정을 마칩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바 40일에서 40이라는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40은 거의 언제나 인내의 한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밤낮을 단식하셨고,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고,

모세는 산 위에서 40일 밤낮을 하느님과 이야기했고,

노아 홍수시대에는 40일간 밤낮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바로 40이 상징하는바 우리 순례여정 기간입니다.

 

순례여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기도하고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치가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온갖 어려의 세상광야여정 중에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정치가임이 분명합니다.



시종여일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자가 구원입니다.

하느님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하느님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삽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육신의 양식이든 영혼의 양식이든 모두가 하느님의 양식이지만,

육신의 양식에 앞서 영혼의 양식인 말씀과 성체를 먹어야 합니다.

 


수도원의 건물 구조와 일과표가 이를 잘 드러냅니다.

수도원 건물의 중심은 성당과 식당입니다.

일과표도 꼭 성당에서의 미사와 기도를 통한 영적 음식을 먹은 후에

식당에서의 육신의 음식을 먹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아침미사하고 아침 식사, 낮기도 후 점심식사, 저녁기도 후 저녁식사

이런 순서로 되어있고,

수도원의 모토 또한 ‘기도하고 일하라.’ 로

하느님의 일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또 성 베네딕도는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말라’하시며

육신의 일에 앞선 하느님의 일인 기도를 우선합니다.

 


진정 먹어야 할 생명의 빵인 주님의 말씀과 성체입니다.


오늘 광야여정 중의 엘리야에게

주님의 천사로부터 선사되는 빵은

그대로 이 미사 중 우리에게 선사되는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상징합니다.


주님의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요.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얼마나 고단했던지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게 눈 감추듯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든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는 주님의 천사는

그대로 하느님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입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오늘 1독서는 늘 읽어도 새롭고 힘이 납니다.

이 구절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강론 제목도 이 구절로 할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정겹고 힘나게 하는 말씀입니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그대로 엘리야는 물론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두고 하시는 화답송 시편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찾을 때 저절로 세상 우상들로부터의 이탈이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하느님 맛을 들일 때

저절로 세상맛으로부터의 이탈이요 탐욕의 절제입니다.

필요 이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살아가시는지요.

하느님 맛을 몰라 세상 것들의 맛에 중독되어 과욕, 과식, 과음입니다.

하느님을 맛들일수록

우리 내면의 무한한 탐욕의 괴물도 순하게 길들여지기 마련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모시는

생명의 빵인 주님의 말씀과 성체로 힘을 얻어

다시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 오르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빵을 먹었다면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됩니다.

 


혼자가 아닌

수호천사와 또 공동체의 도반들과 함께 하느님을 찾는 여정입니다.

사실 제대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생명의 빵을 먹었다면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닮은 삶을 보여줍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괴물이 되지 말고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 용서하는 사람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진짜 사람,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런 이들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성숙의 최고봉에 있는 이들입니다.

 


요즘 얼마 전 깨달은 진리를 소개합니다.


바로 너그럽고 자비로울 때 영적수준이 높은 개인이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잘해서,

규칙을 잘 지켜서,

윤리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힘없는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도와줄 때

비로소 영적성숙의 정상에 있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개인이요 공동체요 나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야여정 중에

당신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빵을 선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생명의 빵인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을 닮아

너그럽고 자비롭게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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