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그 능동적 참여]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 그리고 성모패 예수 성심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뒤 두 번째 주일에 이은 금요일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낸다. 모든 신심 행위 가운데서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은 교회의 신자들 사이에 단연 가장 널리 퍼진 신심 가운데 하나였고 그러하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예수성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 그분의 전 존재, 가장 내밀하고 본질적인 그분의 인격을 드러낸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창조되지 않은 지혜, 무한한 사랑, 인간의 구원과 성화의 주역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심’은 그리스도이시며 강생하신 말씀이시고 구세주이며 본성상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당신 형제들에게 무한한 신적 인간적 사랑을 품고 계신 분이시다.”(대중신심과 전례에 관한 지도서: 원칙과 지침, 166항)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가가 제자들에게 빵과 고기를 건네주셨다고 성경말씀은 전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는 사랑의 행위로써 인간적 사랑을 인간행위로 표현된 그분의 사랑이며 그러한 사랑은 바로 당신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행위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육화(肉化) 즉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시다.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이 당신 조건이 아닌 우리 조건에 맞추어 당신을 알려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방식이다. 따라서 하느님이시며 말씀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되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성상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당신 형제들에게 무한한 신적 인간적 사랑을 품고 계신 분이시다. 교황님들께서도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이 성서에 토대들 두고 있다고 자주 언급하셨다. 아버지와 한 분이신 예수께서는(요한 10,30 참조)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과 긴밀한 친교를 이루며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도록 당부하신다. 예수성심의 표상은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서 이는 교회의 놀라운 성사를 상징한다.(위 지침서, 167항) 교회는 예수성심을 예수님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바라봄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닫도록 권고 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문이시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 여러분에게 그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무엇이 흘러나왔는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들어가고자 하는 곳을 선택하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물로 여러분은 정화되고 그 피로 여러분은 구원을 받습니다.”(성 아오스딩, 시편상해, 138편) 많은 성인들이 예수성심 안에서 ‘안식처’를 발견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원천이시며 성령께서 흘러나오시는 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비의 자리, 약속의 땅, 참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예수님의 옆구리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예수 성심에 대한 인식은 자비주일을 탄생시켰다. 대중신심은 어느 한 신심을 그것의 성화상학적 표현과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현상이다. 예수성심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는 그리스도이시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신심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에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지낸다. 이렇게 연이어 지내는 것은 그 자체가 이 두 날의 긴밀한 연관성을 드러내는 전례적 표지이다. 예수 성심의 신비는 예수님의 추종자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제자이시도 한 성모님의 성심에 투사되고 반사된다. “예수 성심 대축일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그 원천인 예수님의 성심에 환원시켜 종합적으로 기념하는 것처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도 강생에서 죽음과 부활, 성령을 보내주심에 이르기까지 성모님과 성자의 구원 활동이 맺고 있는 복잡하고 근원적인 관계를 기념한다. 1917년의 파티마 발현에 이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이 매우 널리 퍼져 나갔다. 교황 비오 12세는 파티마 발현 25주년(1942년)에 교회와 인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였고 이 기념을 교회 전체로 확신시켰다.”(위 지침서, 174항)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도, 대중신심에서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신심은 예수 성심 신심과 유사하다. 개인과 가정, 수도 공동체와 국가의 봉헌, 기도를 통한 죄의 보속, 금욕, 자선 행위,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부탁하신 5개월간의 첫 토요일 신심 등이 그것이다. 성모패 신자들은 복되신 동정마리아 상이 새겨진 메달을 지니고 싶어 한다. 이는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께 바치는 공경의 표시이며 신앙의 증거이고, 그분의 모성적 보호에 대한 믿음의 징표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러한 성모 신심의 징표들을 축복하며 “그 징표들이 우리 주님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도움을 기대하는 신뢰를 증진시켜 준다.”(축복 예식서, 1168항)고 믿는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어머니께 바치는 신심은 실생활의 증거를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여러 메달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것은 ‘기적의 메달’이다. 이 메달의 기원은 성모님께서 파리의 사랑의 딸회 수련자인 카트린느 라부레 성녀에게 발현하신 1830년으로 거슬러 간다. 이 메달은 성모님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뛰어난 상징성 때문에 ‘성모님의 작은 세례’로 묘사된다. 기적이 메달은 부활의 신비와 예수 성심의 사랑과 성모님의 고통의 마음을 상기시키며, 또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중개 역할과 교회의 신비와, 천상과 지상의 관계, 현세의 삶과 영생의 관계를 뜻한다.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1941)은 이 기적의 메달을 널리 확산시키는데 적극적이었다. 1917년 콜베 신부는 자신의 수도원인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젊은 수도자였을 때 로마에서 창설한 ‘원죄 없으신 성모 기사회’의 배지로 채택하였다. 다른 모든 메달과 경배물과 마찬가지로 기적의 메달도 부적으로 여겨지거나 어떠한 맹신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 메달을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인의 메시지에 대한 겸손하고 끈기 있는 투신과 충실한 기도 그리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구한다.(위 지침, 206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허윤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정부교구 광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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