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령강림절 장미, 작약, 삼위일체 꽃 삼색제비꽃과 자주달개비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주변에서 자라고 피어나는 꽃들과 식물들을 보면서 특정한 축일을 맞으면 그 축일에 걸맞은 상징성을 읽어냈다. 그리하여 작약은 성령강림대축일과 관련해서 ‘성령강림절 장미(pentecost rose)’라고, 삼색제비꽃과 자주달개비는 삼위일체대축일과 관련해서 ‘삼위일체 꽃(Trinity flower)’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작약(peony) 사람들이 그 모양을 보고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꽃 중에 모란과 작약이 있다. 아무튼 꽃의 모양은 매우 비슷하지만, 모란과 작약은 다른 식물이다. 작약은 초본 식물, 곧 풀이고 모란은 목본 식물, 곧 나무다. 그리고 잎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화려한 꽃을 보기 위해 화단에 심어 길렀다. 신라 선덕여왕의 일화 때문에 모란은 향이 없는 꽃이라고 아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부귀화(富貴花)라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아 온 모란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은 은은한 향이 풍겨 나온다. 그리고 모란의 꽃잎이 뚝뚝 떨어져 버리고 나면, 모란을 쏙 빼닮은 풍만한 꽃이 또 피어난다. 겨울이면 줄기가 모두 죽고 뿌리만 살아남았다가 봄이면 다시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풀 작약이다. 작약도 오래전부터 모란처럼 관상용으로 화단에 심어 길렀는데, 작약의 향기는 모란보다 좀 진한 편이다. 또한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하기도 한다. 작약은 독일어로 핑스트로스(pfingstrose)다. ‘성령강림절(또는 오순절) 장미’라는 뜻이다. 추측해 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작약이 비교적 이른 시기인 4,5월에 꽃을 피우지만 예전에 유럽에서는 아마도 성령강림절 무렵에 꽃을 피웠던 모양이다. 그래선지 작약이 성모 동산에서는 ‘성령강림절 장미’ 또는 ‘성모님의 장미(Mary’s rose)’라고 불린다. 그런데 작약이 이렇듯 거창한 이름으로 불려 왔음에도, 교회에 전해오는 작약에 관련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서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페온(Peon)이라는 공주가 이웃 나라의 왕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왕자가 먼 나라로 전쟁하러 가야 했다. 왕자는 공주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고, 공주는 늘 기도하며 왕자를 기다렸다. 전쟁이 끝나서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돌아왔지만, 왕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들 왕자가 전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주는 왕자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렸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궁궐의 담 너머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경 악사가 부르는 구슬픈 노래였다. 왕자가 공주를 그리워하다가 죽어서 모란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공주는 악사가 부르던 노래에 나오는 나라를 찾아갔다. 과연 모란꽃이 피어 있었다. 공주는 그 앞에서 “사랑하는 왕자님 곁을 다시는 떠나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공주의 정성에 감동한 신들은 공주를 모란 옆에서 탐스런 작약으로 피어나게 해 주었다(Peon → peony). 그리하여 모란이 피고 나면 으레 작약도 뒤따라서 피게 되었다고 한다. 삼색제비꽃(viola tricolor)과 자주달개비(spiderwort) - 삼색제비꽃. 삼위일체 교의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스도교의 진리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사랑, 부양, 보호, 용서, 치유, 정의, 평화의 경륜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한다고 여기는 식물이며 꽃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듣는다. 그리고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며 우리의 행위들과 일들과 고통들에 영적인 지향을 얹어서 그분 앞에 오롯이 봉헌한다. 이러한 상징성을 가진 식물들 중에 우선 친숙한 것은 토끼풀(shamrock)이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파트리치오는 소년 시절에 잡혀가서 종살이하던 아일랜드를 빠져나오면서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되기를 염원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선교사가 되어 다시 그곳을 찾아가 켈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 성인은 잎이 3개인 토끼풀을 이용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밖에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식물로 삼색제비꽃과 자주달개비가 있다. 삼색제비꽃은 유럽에서 ‘삼위일체 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야생 팬지’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한 송이에 3가지 색, 대개는 보라색, 흰색, 노란색이 들어 있다. 오늘날에는 변이종들이 생겨서 꽃잎이 더욱 커지고 색깔은 1가지나 2가지인 신품종들이 널리 퍼져 있는데, 흥미롭게도 신품종 팬지들에서 어느 한 가지 색이 우세를 보이는 경우에도 꽃의 중심부에는 나머지 두 색깔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각각의 꽃에서 우세를 보이는 색과 그 중심부에 늘 공존하는 다른 두 색이 어우러진 가운데, 이를테면 노란색이 주도적인 꽃은 성부 하느님의 영광을, 보라색이 주도적인 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의 고통과 슬픔을, 흰색이 주도적인 꽃은 교회와 함께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빛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시는 가운데 세 위격 중 어느 한 위격으로 현존하시더라도 항상 다른 위격들과 더불어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삼색제비꽃은 ‘성모 마리아의 기쁨’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루카 1,47)라는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와 관련되어 오래전에 지어진 이름이다. - 자주달개비. 한편, 꽃잎이 3개인 꽃을 피우는 자주달개비는 독일에서 ‘삼위일체 꽃’이라고 불린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이 식물은 달개비(닭의장풀)보다 꽃의 색이 짙은 데다 자주색 잎에 얼룩무늬까지 있어서 관상용으로 선호된다. 그런데 이 식물은 ‘방랑하는 유다인’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예수님께 불친절했던 어느 유다인에 대한 전설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가시던 예수님께서 지치신 나머지 어느 집 처마 아래서 쉬고자 하셨다. 그러나 집주인은 목이라도 축이시라며 물 한 모금을 드리기는커녕 심한 욕설과 돌팔매질로 예수님을 쫓아버렸다.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시며 “내가 이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너는 이 세상을 방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이 유다인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쫓겨서, 죽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채로 끊임없이 세상을 방랑한다고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