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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5 조회수701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Lk.1,42)




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 1코린토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제가 갑곶순교성지에서 생활할 때의 일 하나가 떠올려 집니다. 처음에는 신자도 없고 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었지요. 아무튼 갑곶성지로 발령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쾅’ 소리가 나 놀라서 깼습니다.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하고 근처에 사람도 없는 아주 조용한 성지였기 때문에 이런 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었거든요. 순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이 들어온 것 같았거든요. 가슴이 콩닥거리며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경당에 놓여 있는 성체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열쇠로 잠겨있는 감실을 보고서 값비싼 보물이 들었을 줄 알고 뜯으면 어떻게 할까 싶었지요.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많은 것처럼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간 저는 혼자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도둑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제가 창문을 열어 놓아 바람에 의해 화분이 넘어져 깨진 것이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론 맺고, 혼자서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나의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즉,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불행한 생각을 하면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생각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행복한 말을 하는 습관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뇌는 한번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겉으로는 아닌 것 같지만,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창고 속에 모두 저장되어 들었던 내용들이 필요할 때 툭 튀어나온답니다. 따라서 행복한 말을 하고, 행복한 소리를 들을 때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지상 생활을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부르심을 받아 당신이 직접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지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이런 영광을 받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적으로 객관적으로 볼 때 성모님의 삶은 정말로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행한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말과 생각은 항상 행복과 연결되어 있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엘리사벳을 만나서 ‘성모찬송’이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아직 어린 나이, 또한 미혼모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불안한 미래를 간직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승천이라는 큰 영광도 얻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과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하느님과 가까울수록 행복이라는 것도 내게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행복은 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몰입에서 나온다(토드 부크홀츠).


아인카렘에서 성모님과 엘리사벳 만나시다.



행복을 만드는 비교의 법칙
 

언젠가 어떤 책에서 “우리나라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저이지만, 순간적으로 궁금하더군요. 그런데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글쎄 ‘이웃집 남자’랍니다. 아내가 항상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웃집 남자는 항상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더라.

이웃집 남자는 아내에게 그렇게 잘하더라.

이웃집 남자는 신사더라.

이웃집 남자가 새 차를 샀다더라.

이웃집 남자는 인간성이 정말로 좋더라.

등등의 말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 결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이웃집 남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비교해서 좋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비교해서 내가 우위에 있으면 조금 행복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지요. 만약 비교해서 내가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정말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교대상을 줄이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이웃집 남자가 나의 비교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함께 실천하는 동반자라는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나의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또 다른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있는 그대로 최고로 생각하고 최고로 대한다면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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