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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의 예표들 - 8.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6 조회수41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8.16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에제12,1-12 마태18,21-19,1

 

 

 

 

 



회개의 예표들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오늘 미사 중 화답송 후렴입니다.


‘하느님을 잊지 마라’는 말은 ‘하느님을 늘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나를 잊게 되고 뒤따르는 갖가지 불행입니다.

하느님을 늘 기억할 때 깨어있게 되고 눈이 열려

주변의 모두는 회개의 예표들이, 깨달음의 표지들이 됩니다.

사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보다 더 좋은 회개의 예표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두 일화를 나눕니다.

하나는 어려운 병으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어느 수녀님이

공동체의 지극 정성의 간호와 배려의 사랑으로 살아난 이야기를 들으며

공동체의 사랑에 감격한 일화입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참 아름답고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아, 이게 좋은 공동체다.

  수준 높은 영적 성숙의 공동체다.

  하느님의 눈에도 합격이다.

  건물이, 재력이, 전례가 좋고, 인재가 많아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이런 병자와 약자에 대한 사랑의 배려가 뛰어난 공동체가

  진정 좋은 공동체다.’

 

라는 깨달음이 새삼 가슴을 쳤습니다.



1독서의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수도공동체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반항의 집 안 한 가운데에 회개의 예표로 주어진 에제키엘입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라는 표현이 무려 7회나 나올 정도로

부단히 주어진 회개의 예표, 에제키엘 이었는데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백성은 응답에 실패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에제키엘뿐 아니라 중병에 걸렸던 그 병자 수녀님도 수도공동체에 예표였고,

공동체는 순종의 사랑으로 성공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니 공동체의 약하고 병든 형제들 모두가 회개의 예표일 수 있습니다.


비상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회개의 예표에 회개의 사랑으로 응답할 때 하느님 체험입니다.

 



또 하나의 깨달음도 늘 새롭습니다.

폭염의 더위에도 그동안 성전 안은 에어컨 시설로 시원했습니다.

밖의 더위도 곧 잊게 되고 그러다보면 밖도 시원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다 밖에 나오면 비로소 더위의 현실에 착각에서 깨어납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이게 사람이구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수 있겠다.

  제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참 힘들겠다.

  잘못 입력된 정보에 세뇌되거나 주어진 환경에 길들여지다 보면

  정말 세상 제대로 알기가 힘들겠다.

  이런 착각에서 형성된 불치의 정신적 질병과도 같은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참 바꾸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의인이 죄인을,

강한 이가 약한 이를,

건강한 이가 병든 이를,

공부 잘하는 이가 공부 못하는 이를,

부자가 가난한 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뿐이 없습니다.

이래서 지도층에 있는 분들의 자발적 현장체험이 절실합니다.

 



이런 깨달음과 연관된 오늘 복음입니다.


만 탤런트 탕감 받은 이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그에겐 회개의 표징이었습니다.

반항의 집안 이스라엘처럼,

만 탤런트 탕감 받은 자도 회개의 응답에 실패했습니다.

 

어찌 보면 반항의 집안 이스라엘이나 무자비한 종 모두가

우리 인간의 보편적이자 부정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부정적인 어두운 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이기적이다.

2.받은 은혜를 잘 잊는다.

3.자기를 모른다.

4.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바로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이,

만 탤런트 탕감 받은 이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만 탤런트 탕감 받은

은혜의 현실을 잊었던 무자비한 종에 대한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이 악한 종아,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깨어 있어, 깨달음의 은총에 눈이 열릴 때 발견되는 회개의 예표들입니다.


하여 이타적인 삶에

받은 은혜를 늘 기억하며 자기를 알고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게 됩니다.

반항이 아닌 순종의 사람이,

무자비가 아닌 자비의 사람이 되고

일곱 번이 아닌 일흔일곱 번의 무한한 용서 중에 점차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깨어 순종과 자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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