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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7 조회수84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man must not separate.
(Mt.19,6)



제1독서 에제키엘 16,1-15.60.63
복음 마태오 19,3-12
 
바닷가에 놀러 온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바다에서 수영해도 돼요?”
“물이 너무 깊어서 안 돼.”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아빠는 저기서 수영하고 있잖아요?”
그러자 엄마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얘는~ 아빠는 보험을 들었잖니!”

정말로 이런 관계가 부부관계라면 어떨까요? 즉, 사랑의 관계가 아닌 물질적인 이해관계가 더 우선시된다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 이러한 관계가 점점 더 눈에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그래서 그냥 유머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지’라면서 당연한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왜 일까요?

하긴 국내의 한 연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부부가 하루에 서로의 눈을 보며 감정을 나누는 대화시간이 고작 2분 37초라고 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나누는 대화가 부족하다보니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쉽게 이혼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의 일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동반자로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이혼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즉, ‘이유만 있다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가?’ 라는 것이지요. 이는 당시 혼인을 마치 매매 계약처럼 생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실 당시의 여인들은 혼인하면 남자의 소유물이 되어서, 부부라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재산권이나 상속권 같은 것도 행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은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버렸던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나의 배우자는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나의 또 다른 몸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 중에서 어디 한 군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나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어디 한 군데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어떤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만나고 대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부부는 한 몸이라는 사실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진정한 만남을 가질 때 하느님의 뜻은 더욱 더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자. 그들은 우리의 영혼이 꽃피도록 도와준 정원사이므로(마르셀 프루스트).



저희 화목한 가족입니다.



억겁의 우연 끝에 만난 사람들(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 중에서)
 

김홍신 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부부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감안한다면 20대 후반에 결혼해서 한 평생을 같이 산 부부는 보통 50여 년을 함께한 셈이 됩니다. 한 사람과 50여 년을 살자면 참으로 지겨울 때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인연 맺을 때는 참으로 좋았던 사이도 살다 보면 회한이 쌓이게 됩니다. 오죽하면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을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던 사람들이 왜 서로를 원수처럼 느끼는 것일까요?

면밀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 절대권을 가진 듯 배우자의 생각과 행동과 가치관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것도 자기 편한 대로, 자기 기분에 맞추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을 길들이려는 것이 됩니다.

좋은 애완견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애완견을 기를 때는 대소변을 잘 가리고 나에게 재롱을 부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내 말에 절대복종하기를 바랍니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이 한집에서 사는 것이지 애완견을 기르는 게 아닙니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자면 자기주장과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상대를 만났고 평생을 같이 살기로 작정했습니까? 그 바탕에는 사랑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덕을 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할 때로 돌아가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합니다. 그때는 베풀기를 즐겼고 양보하고 배려했으며 상대의 입장과 주장에 동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말한 대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처음처럼 행동하십시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벌판을 내달리다가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너무 빠르게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혼자 편한 대로 생각하고 혼자 상대로 재단하고 마음대로 달려가면 상대가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 멈추어서 상대를 살펴보십시오. 당신을 따라오는 상대가 지쳐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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