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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편적 사랑의 동등한 가치를 악용하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2 조회수346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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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언제나 더 큰 욕심을 내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각 자신의 필요충분 조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로써도 만족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다섯이 되어야 만족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똑같이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더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하나이면 될 것도 다섯을 챙기며 나머지는 풍족하게 사용합니다. 다섯이 필요한 사람은 겨우 둘 정도에서 세개가 부족하게 됩니다.

네개를 풍족하게 사용하면서도 세개를 자기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이 대우받기를 요구합니다. 두개가 남아도 남이 다섯이면 세개를 달라고 하는 보편적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세개가 부족한 사람은 마침내 빈곤한 처지에 빠집니다.

모두가 동등하다며 자기 것을 내어 달라고 소리칩니다. 보편적 복지를 이용해서 부자와 힘있는 자들은 선거를 통하여 서너개에서 열개 정도가 집안에서 남아 돕니다. 밖에서는 다섯개가 모자라 빈곤에 허덕이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가치와 나눔이라는 가치는 욕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가치가 전혀 없는 남의 일입니다. 욕심만이 자신의 가치입니다. 다섯개에서 하나를 내어 주고 네개로 절제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실천'자들은 조용한 촛불의 빛과도 같습니다.

매스컴에 오르 내리며 얼마를 많이 기부했다고 광고하는 평화신문 같은 종교 매체들을 비롯한 온갖 매스컴들이 세상에서 판치는 시대입니다. 일억원이 필요하면 1만원씩 1만명의 사랑의 실천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종교 세상이 되었습니다. 1억원이 필요하면 1억원을 기부하는 1사람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종교 세상인 것입니다.

자기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동등하다며 보편적 사랑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빈곤한 이들은 더욱 빈곤해 지고 힘없는 이들은 더욱 힘을 갖지 못합니다. 빈곤과 약자는 더 많은 빈곤과 약자들을 산출해 냅니다. 나쁜 정치는 '보편적 가치'를 아주 교묘하게 잘 악용합니다.

자기 것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기하지 않고, 죄악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봅니다. 자기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욕심을 내면서 시기와 죄악이 자신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막지 못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창세기 때부터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되어 졌습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은 '이 교묘한 사랑의 죄악'에서 자신의 영혼을 생명으로 지켜 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서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결코 행동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동등하다며 보편적 사랑의 가치를 악용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로인해 빈곤한 자들은 더욱 빈곤해 지고 약자는 더욱 약자로 놓여지게 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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