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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아[16]노아의 축복과 저주 속편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5 조회수611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렇다면 왜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했을까?
도대체 가나안의 정체는 누구이며 노아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분명히 노아의 알몸을 본 사람은 함이다.
이 ‘함’과 노아가 깨어나 ‘작은 아들’이라고 지칭한 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일부 성경학자는 이 ‘함’과 ‘가나안’이 동일인이라고 한다.
노아의 세 아들의 나이순은 셈, 함, 야펫이란다.
성경에는 세 아들만 거론한다.
홍수전에도 세 명이었고
분명히 그 세 명이 결혼해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방주로 들어갔다.
그건 성경에 있는 내용이다.
성경에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 내외만이 방주에 승선했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사람이라곤 단 여덟뿐이다.

그 순서도 홍수 전후 한결같이 셈, 함, 야펫이다.
셈이 첫째고 함이 둘째 야펫은 막내다.
그래서 작은 아들은 ‘함’이다.
그렇지만 이 ‘함’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함은 가나안의 조상', 또는 ‘가나안의 조상 함’이라고 한다.
이렇게 반복해서 수식어를 붙이고 말하는 게
함과 가나안이 동일 인물임을 지적하기 위해 나중에 첨가된 부분이란다.
이것을 가장 가깝게 알려주는 것이 ‘가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는 제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리라.(창세 9,25)’,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어라.(9,26)’,
‘가나안은 야펫의 종이 되어라.(9,27)’라는 연속되게 언급되고 있는 세 곳을 들고 있다.

다시 말해 둘째 함은 제 형제들의 가장 천한 종이 되며,
형님 셈의 종이 되고 그리고 동생 야펫의 종도 되라는 것이다.
홍수 후 노아가 알몸으로 누워있을 때 꼭 세 명의 자식들만 있었다는 보장이 없다.
또 다른 아들을 출산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함과 가나안’은 동일인임의 근거가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함의 네 아들중의 하나인 ‘가나안’은 세컨드(second),
즉 2세 격인 ‘가나안 2세’를 지칭할 것을 줄여 ‘가나안’이라 하는가보다.
암튼 대단한 추측이고 그 내용역시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노아가 왜 이 저주를 아들에게 내리는가이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천막 안에 누워 있었는데
이 알몸을 아들 함이 보고는 자기가 아버지의 몸을 덮어드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는 게 큰 잘못이었다.

그 때에 노아가 잤는지 그냥 자지 않고 술기운인 상태로 있었는지는 모른다.
문제는 아들이 아버지의 알몸을 방치했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안 다른 두 형제는 ‘겉옷을 집어 둘이서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 드렸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뒷걸음으로 조용조용 들어가서
아버지의 그 수치스러운 모습을 직접 보질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함은 아버지의 술 취해 누워 계신 모습을 다 보았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다른 두 형제는 함보다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창세기 저자는 아담과 하와의 죄,
카인과 아벨의 형제간의 죄,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죄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면 그 벌의 내용도 언급한다.
노아의 알몸 사건은 그 벌이 하느님께로 부터가 아니고 노아가 직접 주관한다.
부모입장에서 자식에 대한 교육이다.
자식이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히면
보모와 자식사이에 올바른 가족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모두는 부모님께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이 도리가 후일 십계명의 넷째로 자리 잡았다.
자식이 부모님을 효도하지 않으면
사회의 질서가 그 방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함의 불효에 대해서 노아는 함 대신에 ‘가나안’을 저주하였다.
지금까지 함과 가나안이 동일인임을 전제로 한 노아의 저주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과연 그 둘은 동일인일까?

[계속해서 17편 '노아의 축복과 저주 속1'이 계속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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