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6 조회수786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Master,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We have come to believe
and are convinced that you are the Holy One of God.”
(Jn,6,68-69)


제1독서 여호수아 24,1-2ㄱ.15-17.18ㄴㄷ
제2독서 에페소 5,21-32
복음 요한 6,60-69

1990년도 초에 ‘꽃과 여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경자 화백의 작품 한 점 때문에 세상이 무척이나 시끄러웠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러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인도를 대량 복제해서 1점당 5만원에 판매한 것입니다. 그런데 천경자 화백은 이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지요.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 틀림없으며, 심지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구과학기술원 그리고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까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작 이 그림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이 과정에서 천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불명예와 함께 엄청난 정신적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나중에 위조범이 잡혀서 이 미인도가 위작임이었음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이 과정 안에서 겪은 천화백의 아픔은 치유되기에 이미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끼고 일체의 작품발표. 화상과의 거래를 끊겠다는 결심을 공표했습니다.

이렇게 작가를 믿지 못했던 것은 왜 일까요? 바로 돈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거래된 가격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았고, 소장자의 보이지 않는 힘도 여기에 크게 작용했지요.

이처럼 돈과 같은 세상의 기준 앞에 진실도 거짓이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만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세상의 기준 앞에서 당신의 진실이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있었지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 말씀을 세상의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슨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까요? 단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 진리의 주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주님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고 따르십니까?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적 기준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있을 때, 우리 역시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고백을 매일같이 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언가 되고 싶고, 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은 기적을 만드는 재료들이다(노먼 빈센트 필).


그동안 허리때문에 자전거를 못탔는데, 저 치료해주시는 분이 이제 타도 된데요.
그런데 비온다며요?



주님께 더욱 더 매달려야 하는 이유
 

등산을 다니다보면 종종 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 가꾸어진 묘지를 보면 보기에 참 좋지만, 후손들에게 잊혔는지 상석도 하나 없이 무덤 본래의 모습을 잃은 채 잡초더미 속에 있는 묘지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도 사람들에게 잊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에는 좌청룡 우백호를 말하며 명당을 찾지 않는다고 하지요. 대신 ‘좌택시, 우버스’라고 하면서, 후손들이 잘 찾아올 수 있는 교통 편한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하긴 인간의 기억으로 얼마나 기억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잊힐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겠지요. 따라서 우리가 주님께 더욱 더 매달려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시기 때문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