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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눈먼 스승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6 조회수667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


  
복음: 마태오 23,13-22






책을 읽는 성모자


에이크(Eyck, Jan van) 작, (1433),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 눈먼 스승 >

       인터넷을 통해 어떤 유명하신 목사님이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십일조를 하면 하느님께서 몇 배로 갚아주지만, 하지 않으면 집 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반드시 몇 배로 빼앗아 가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십일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야하지만, 마치 더 많은 재물을 축복으로 받는 것이 목적인 양 설교하는 것을 듣고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십일조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체성사와 연관시켜 말해줍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곧 십일조이고 멜키세덱 대사제가 아브라함에게 그 십일조를 받고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봉헌하여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듯이, 우리도 그 감사의 예물을 통해 성체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봉헌하는 그 감사의 예물에 당신의 은총을 더 해 우리에게 돌려주시는데, 그 가장 큰 은총이 바로 성체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모님께서 당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음을 알고 감사의 제물로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그 육체에 당신 자신을 결합시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세상에 구원을 주러 내려오신 것과 같습니다. 결국 십일조는 성체와 연관되어 우리 구원과 직결되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재물을 불리는데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위대한 스승은 올바른 길과 목적지를 알려주는 스승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비판하는 스승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보게 하고 그 앞과 또 그 안은 보지 못하게 하는 눈먼 인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전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보다는 금에 눈이 먼 이들이었습니다.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은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면서 그 제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보다 제물에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관심 있는 것에만 눈이 먼 스승을 쫓아다니다가는 그들처럼 눈먼 제자밖에는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스승이 눈이 멀었는지, 멀지 않았는지 알아볼 수 있고,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육은 아무 쓸모없고, 영은 생명을 준다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스승은 눈 먼 스승이고 그를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성령을 받기 전의 성경해석과 그 이후의 해석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스승이 문자적이든, 육체적이든, 세속적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나 세상에 집착하게 만들면 그 스승은 눈먼 스승입니다. 예수님은 참 스승으로서 제물보다는 제단을, 제단보다는 성전을, 성전보다는 거기에 거하시는 하느님을 보도록 가르치십니다. 즉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성경을 전공하며 석사논문을 썼던 것은 예루살렘에 관한 몇 편의 시편에 나와 있는 예루살렘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엔 가보지 않았지만 책들을 뒤져가며, 예루살렘의 지리, 역사와 형성 및 발전과정, 유태인들에게의 종교적 의미 등을 찾아 정리하며 예루살렘에 대해 박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의신학 쪽의 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데, 그 교수님은 예루살렘이 마리아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 등의 의미를 지닌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성서 쪽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무언가 더 풍요롭고 거 깊은 의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예루살렘은 겉모양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면, 그 분이 가르치는 예루살렘은 겉모양 안에 숨겨진 상징적인 의미들을 찾아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성서신학 교수님을 떠나서 교의신학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예루살렘이지만 성서신학 교수님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을, 교의신학 교수님은 보이지 않는 예루살렘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참 스승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보게 해 주는 분이어야 합니다. 올바른 스승을 찾으려면 세상에 밝은 스승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지닌 스승을 찾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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