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26 연중 제21주일

여호24,1-2ㄱ.15-17.18ㄴㄷ 에페5,21-32 요한6,60-69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요 며칠 전 제 방에는 난데없는 개미들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나머지 걸레로 닦아내고 몰아냈습니다만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좀 잠잠한듯하더니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수한 개미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순간 깨달음처럼 스친 게 태풍이었습니다.

“아,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28일 경 상륙한다더니

  개미들이 미리 알아챘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여 ‘개미와 폭풍’을 넣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개미는 미리 장마를 감지하여 피난길에 오른다는

어느 독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미물인 개미가 폭풍우를 내다보는 감각이 신기합니다.

과연 시대의 표지를 깨닫는,

하느님의 도래를 감지하는 우리의 영적감각의 상태는 어떤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세상의 빛’이란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저서 중 다음 대목에서 착안했습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더 높은 기준을 세워야만 하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위대한 행복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오르기 힘든 산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굽이를 거쳐야만 비로소 정상에 오르고

  그래야만 존재의 아름다움을 경험해볼 수 있는 법입니다.

  이를 강조하는 일이 바로 저의 관심사입니다.”

산 높이에의 여정은 역설적으로 깊이에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온갖 시련 중에 겸손으로 깊어지는 여정이

내적으로는 하느님의 산 높이에 오르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교황님의 통찰은 그대로 얼마 전 저의 깨달음과 일치합니다.

엘리야가 40주야의 여정 끝에 도달한 하느님의 산 호렙은

우리 모두의 등정 목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산 호렙이 상징하는바 ‘나’라는 산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산 호렙입니다.

첫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나’라는 ‘하느님의 산’에의 등정을 뜻합니다.

진정 타야할 산은 ‘나’라는 산입니다.

하나하나가 등산해야 할 하느님의 산입니다.

바로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여 산을 타는 이유는

바로 이런 하느님을 찾는 내적갈망의 표현입니다.

진정 깨달은 이들은 밖의 산타기 등산에서

이제 내적으로 ‘나’라는 하느님 산타기에 오릅니다.

매일이 ‘나’라는 산의 등산길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나’라는 하느님의 산 어느 지점의 높이에 이르렀는지요.

산타기를 잊고 마냥 머물러

산 아래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시간 보내지는 않았는지요.

사람이 산입니다.

사람처럼 산마다 크기, 높이, 모양은 다 다릅니다.

똑같은 하느님의 산이 아니라 사람마다

하나하나 크기, 높이, 모양은 다 다른 하느님의 산들입니다.

내 하느님의 산꼭대기에 이르러 하느님을 만납니다.

마치 하느님의 산 호렙 정상에서 하느님을 만난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하느님의 산들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나’라는 하느님의 산을 잘 탐구하여 등정에 올라야 합니다.

하여 나를 찾는 여정이 하느님을 찾는 여정과 일치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산 등정 길에서

1독서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한 후

하느님 목표를 새롭게 환기시킵니다.

주님을 섬길 것인지 이방 신들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 하십니다.

이방의 우상들에 빠져 하느님의 산 등정 길에서 좌초하는 것보다

큰 불행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현명했습니다.

여호수아에 말에 화답하여

기꺼이 하느님의 산 등정 길에 오를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역사를 렉시오디비나 해봐도 그대로 통하는 고백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우리가 지나온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주셨고

계속 하느님의 산 등정 길의 가이드가 되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산 등정 중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시켐에서 모여

새롭게 하느님 목표를 확인하며 영육을 충전시킨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산 등정 여정 중

주님의 미사모임 안에서 잠시 쉬면서

영육을 하느님의 영과 생명으로 충전시킵니다.

성인은 ‘나’라는 하느님의 산 정상에 올라 하느님을 만났던 분들입니다.

스켐에서의 모임 후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모세의 죽음처럼 장엄합니다.

“이 일을 마친 다음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죽었다.

  그의 나이 백 십 세였다.”

과연 여호수아처럼

‘나’라는 하느님의 산 정상에 도달한 후 복된 죽음을 맞이한 이들

몇이나 될까요.

둘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2독서 바오로 사도가 이런 진리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참된 삶이요 올바른 인간관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단히 정화되고 성화되면서 참되고 올바른 관계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을 벗어나면 괴물이 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묻지 마 살인’등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는 인간괴물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단골용어입니다.

부부관계보다 더 어려운 관계도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부부가 함께 한 몸으로 하느님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경우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지만

고맙게도 바오로 사도가 그 비결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 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일방적 순종과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 순종과 사랑을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상호 순종과 사랑에 항구할 때

비로소 부부는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산 정상에 도달합니다.

믿는 이들에겐 부부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완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다 다른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여기 남자수도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기적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맺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가능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또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또 서로 용서하기에

가능한 새로운 인간관계요 공동생활입니다.

셋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빵을 먹어야 사는 육적존재이지만

말씀을 먹어야 사는 영적존재인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과 말씀’은 실종되고

온통 ‘돈과 밥’의 육적인 것이 전부가 되어가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육신의 빵을 기대했던 제자들의 실망도 이해가 됩니다.

말씀을 듣기가 거북하다며 투덜댑니다.

이들의 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주님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육은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육신의 빵 등 세상 것들에 중독된 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날 물신주의에, 금전만능주의에 중독된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우레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적존재로 만들고,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충만한 생명의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의 근원적 기갈은 하느님에 대한 기갈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굶주리고 하느님 말씀에 목말라 겪는 우리의 시련입니다.

정작 맛 들여 할 것은 하느님 맛, 말씀 맛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오늘 화답송 후렴 말씀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아갈수록

세상맛들로부터 점차 해독되어 자유로워집니다.

한두 번 씹어선 당장 맛을 모르지만

씹고 씹으며 묵상할수록 깊어지는 말씀 맛, 하느님 맛입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떠났지만

열두 제자들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알았습니다.

진정 찾아야 할 분은, 올라가야 할 하느님의 산은 주님뿐임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이들을 대변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역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찾아

이 은혜로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연중 제21주일, 주님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첫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나’라는 ‘하느님의 산’에의 등정을 뜻합니다.

 
둘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나’라는 ‘하느님의 산’ 등정 중에 있는 우리를

당신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시어

당신 안에서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 당신 영과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