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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랫목 따뜻한 밥 한 그릇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7 조회수533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네요. 하늘이 무슨 값이 나가나요? 당신이 헐값에도 안 팔리는 하늘이라면 난 금싸라기 땅이에요.
한 지붕 한 마음으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둔 밥 한 그릇, 그것에는 사랑한다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밥그릇을 셀 수도 없이 받았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을 것인가. 아랫목 따뜻한 밥 한 그릇

서양 사람들은 남녀 간의 애정 표현이 습관화되어 있 다. 마음이 원하면 서슴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감정의 리듬 에 맞는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동양인들과는 다르다. 우리나라 경우는 마음이 원해도 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 로 여겼다. 요즘에는 그런 미덕도 사라져 가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서로 애정표현 한 마디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무던히도 연인관계나 부부관계를 잘 지켜왔다. 우 리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는 편은 아니었다. 밖에서는 그 렇게도 흥이 넘치고 유머감각이 있는 아버지였지만, 집에만 오면 입 을 꾹 다무는 무뚝뚝한 남편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 나름의 방식이 있었기에 오랜 세월 어머니와 해 로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나 물을 뜯곤 하셨다. 아들이 신학교 교수가 된 이후에는 더욱 바빠지 셔서 봄에는 산나물 캐러, 가을에는 밤이나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 면서 조금이라도 막내아들 신부를 도와 주려고 노심초사하셨다. 워낙 부지런한 분이었으니 집안일을 제외하면 한시도 쉬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니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 니는 어머니를 매번 말리셨다. 산에 가서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다치 기라도 하면 어쩌나, 혹여 뱀한테 물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 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 고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나가서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셨다. 어느 날은 동네 사람들과 문수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가셨는데, 처 음에는 아버지의 당부도 있고 해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 귀가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여기도 도토리, 저기도 도토리 라. 동네 사람들과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며 도토리 줍는 재미에 한껏 빠져들었고, 결국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야 깜짝 놀라 산에서 내려오셨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시외버스가 오지 않았고, 그 바람에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가을이다 보니 해는 일찍 지고, 길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어머니는 아 버지의 역정을 들을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찌 설명 해야 하나 고민고민하며 '그저 잘못했다고 사과해야지' 하고 발걸 음을 재촉하셨다. 그런데 멀리서 볼 때는 분명 안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는 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안방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닌가. 동네 사람들 이 각자 집으로 향하며 인사를 나누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아버지 는 불을 끄신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흔들어 봐도 안방의 불은 켜질 줄 몰랐다. 어머니는 뒤뜰 담 쪽으로 빙 돌아가서 안방을 향해 "여보! 문 좀 열 어 줘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여간 화가 나신 것이 아닌가 보다 체념 을 하고 한참을 밖에 앉아 계셨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 리고, 잠시 후 대문 빗장을 여는 소리도 들려왔다. 어머니는 문을 살며시 열고 안마당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빗장을 걸고 부엌에 가서 가만히 솥을 열어 보았다. 솥에는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밥은 없었다. 찬장을 열어 봐도 마찬가지였다. 급히 오느라 저녁도 먹지 못했는데, 오늘은 굶고 자겠구나 하셨다. 그런데 부엌에 있어야 할 작은 상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 참 이상하다. 상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딜 갔을까?' 문을 열고 방 으로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 졌다. "아니! 나다니지 말라면 말 것이지, 왜 자꾸만 말을 안 듣는 거야. 까짓 도토리가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런 위험한 곳을 싸다니느냐고. 뱀한테 물리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돈도 돈이지만 고생을 얼마나 할 텐데! 왜 자꾸 남 걱정을 시키고 그래!" 그냥 역정이 아니라 무척 걱정을 하신 것 같아 어머니는 그저 미 안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아버지의 역정은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혼나는 것은 마땅한 벌이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일찍 오려고 했는데 버스가 안 오는 바람에 이렇게 늦었어요. 이제 다시는 안 갈 거예요."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과에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다. "한 번만 더 가 봐라, 그때는 아주 그냥 문을 잠그고 안 열어 줄 테 니까!" 아버지는 이내 돌아누웠다. 그보다 더 큰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 는데 그만한 게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서둘러 씻고 자려고 옷을 갈 아입는데 방 한쪽에 상이 놓여 있고, 밥상 위에는 상보가 덮여 있었 다. 어머니는 크게 놀라서 멈칫했다. 그때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하셨다. "밥그릇은 저 이불 속에 따뜻하게 해 놨으니까 꺼내 먹든지 말든 지 알아서 해!" 보온밥솥이 없던 시절에는 밥을 그릇에 담아 아랫목 이불 속에 묻 어 두곤 했다. 아랫목에 묻어 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어 본 사람 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 해 그릇에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 두었다가 돌아오면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가족 사랑이요, 그것은 어머니 의 따뜻한 보온 밥을 먹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이었다. 그것을 알고 계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귀가가 늦어지자 손수 밥을 지어서 밥그릇을 아랫목에 묻어 두었고, 밥상까지 차려 둔 것이다. "아이고! 당신참 착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라!" 어머니는 찡한 눈물을 머금으며 늦은 저녁을 드셨다. 나중에 어머 니가 그때의 소감을 전해 주셨는데, 그 밥이 지금까지 먹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고 고백하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밥상은 초라했지만 그 마음만은 무엇보다도 값진 사랑의 확인이었 던 것이다. 당시에는 남자가 부엌에만 들어서도 남사스러운 일이라고 서둘러 내보내곤 했다. 그러기에 남자가 밥상을 차리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아내가 남편이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아 보는 것은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차려 준 애정 어린 밥상을 받아 보았으 니 얼마나 감격했을 것인지 상상이 간다.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둔 밥 한 그릇, 그것에는 사랑한다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밥그릇을 셀 수도 없이 받았으 니 그 은혜를 무슨 수로 다 갚을 것인가.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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