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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자전거의 추억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8 조회수550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네요. 하늘이 무슨 값이 나가나요? 당신이 헐값에도 안 팔리는 하늘이라면 난 금싸라기 땅이에요.
한 지붕 한 마음으로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둔 밥 한 그릇, 그것에는 사랑한다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밥그릇을 셀 수도 없이 받았으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을 것인가. 아름다운 자전거의 추억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겨우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었 다. 아버지는 간혹 나를 자전거 앞쪽에 앉히고 마을을 돌곤 하셨지 만, 나에게 혼자 자전거를 타도 좋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중절 모를 눌러 쓴 채 자전거를 타고 마을길을 달려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아버지처럼 멋지게 자전거를 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 갔다. 하지만 워낙 아버지가 아끼는 자전거였고, 외출하실 때마다 타고 나가시다 보니 좀처럼 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앞마당에 자전거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 짝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셨나 싶어 댓돌 위로 눈길을 돌렸지 만 아버지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자전거를 두고 외 출하신 것이다. 나는 이때다 싶어 이리저리 자전거를 둘러보면서 바퀴도 돌려보고 앞쪽에 달린 경적도 눌러 보았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마당 한 바퀴즘이야 끌고 돌아도 안 되겠 나 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지짓대를 발로 차올리고 자전거를 끌 고 마당을 몇 바퀴 돌았다. 하지만 자전거 위로는 올라타지 않았다. 아버지가 타지 말라는 말씀은 안 했지만 허락도 없이 아버지 자전 거에 손대는 일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허지만 혼자 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자전거 안장에 앉아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 타면 경마 잡고 싶다' 는 옛말이 맞는 말이었다. 나는 페달 위에 발 을 올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짧은 다리가 문제였다. 당 시 내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였는데 어른용 자전거는 몸에 맞지 않 는 옷처럼 컸다. 여러 차례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한 끝에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순간은 날 듯이 기뻤다. 마당을 몇 바퀴 돌던 나는 더 욕심이 나서 마당을 벗어나고 싶었다. 욕심이란 그렇게 점차 날개가 커지는 법이다. 나는 마침내 마을 어 귀까지 신나게 달렸다. 그때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몰래 탄 죄책감도 이미 사라지고 내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처음에는 자전거의 경적만 울려 보기만 했다. 그 다음은 안장에만 앉아 보고 싶었다가 끌고 마당을 돌아보고 그 다음은 자전거를 배우게 되고, 마당만 돌다가 밖으로 나간 것처럼 우리의 금지된 욕심은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내리막 길에서 자전거는 점점 속도가 빨라지며 쏜살같이 내려가기 시작했 다. 순간 겁이 난 나는 브레이크를 잡으려 해 봤지만 속도는 줄어들 지 않았다. 더구나 페달에 겨우 닿던 다리로는 땅을 짚어 멈출 수도 없었다. 결국 언덕을 질주하던 자전거는 두렁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가 아끼시는 자전거는 볼품없이 여기저 기 찌그러져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자전거를 일으키며 겁이 덜컥 났다. 아버지가 아 끼는 자전거를 탈 줄도 모르는 내가 허락도 없이 타다가 망가뜨린 것은 아버지에 대한 커다란 반란이었다. 어린 나이에 내 욕심이 저 지른 죄악이 너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멀고 괴로웠다. 앞이 깜깜하고 발 걸음이 무거웠다. 집에 다다르자 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서 계셨다.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나는 차마 아버지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 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땅 속으로 꺼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 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솟구쳤다. 번개 같은 호통이 떨어질 줄 알았 는데, 너무나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감동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 죄송해요. 허락도 받지 않고 자전거를 탔어요." "혼자 배웠다고?" "네." "그래? 용하게도 탔구나." "끝내는 넘어져서 자전거가 망가졌어요." "그 까짓 고장 났으면 고치면 되지."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잡고 또 한손으로는 절뚝거리는 나를 부축했다. 내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것으로 나 와 아버지의 자전거 사건은 아름답게 일단락되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아끼는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탔는데도 혼내지 않고 따뜻 하게 감싸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처럼 아버지의 둘도 없는 애마인 동시에 나에게는 지난날의 소 중한 기억을 남겨 준 아버지의 자전거는 어머니에게는 그저 애물단 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혼자 타고 나갈 수도 없고, 집안 일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쓸고 닦아 야 하는 일거리만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시기는 하되 청소와 관리는 모두 어머니에 게 미루셨다. 빗길에 진흙투성이가 되고 먼 길에 먼지투성이가 되 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자전거를 아주 소중하게 다루셨다. 그렇게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 지로 남아 있는데, 내가 사제품을 받고 로마에서 귀국한 1979년 가 을 추석 전날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양곡 버스정류장 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자전거를 끌고 가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 다. "이리 와서 뒤에 타거라." "아버지, 제가 어떻게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탈 수 있나요? 제가 운 전할 테니 아버님이 뒤에 타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자전거의 소유권자였다. "이건 내 자전거니까 내가 운전할 테니 어서 뒤에 타거라." 나는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타고 시장을 막 벗어나려는데, 내가 보좌신부로 있는 본당의 신자가 마침 양곡시장 이 집이라 추석을 지내러 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 소문이 본당에 퍼진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전거에 얽힌 얘기는 또 하나 있다. 하루는 장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전거에 태우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늦가을이라 해가 일찍 져서 집으로 돌아오 는 길이 조금 어두웠다. 동네 산 너머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그 부 대에서 나오는 트럭과 코너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군 트럭은 이미 전조등을 켜고 있었다. 아버지는그 전조등 때문 에 눈이 부셔서 자전거의 핸들 방향을 잘못 틀었다. 아차! 하는 순 간에 자전거는 개울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다친 데 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병실을 방문한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신부님, 저 영감은 기운이 세서 멀쩡하고 개미허리인 내 허리만 부러졌어요. 아무리 40년 자전거를 탔어도 무면허는 어쩔 수가 없 는 거지. 나는 무면허 운전사한테 당했으니 보상을 받을 수도 없고, 아이구, 내 허리야!"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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