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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28 조회수856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You cleanse the outside of cup and dish,
but inside they are full of plunder
and self-indulgence.
(Mt.23,25)



제1독서 2테살 2,1-3ㄱ.14-17
복음 마태오 23,23-26

어제 미사 때문에 교구청 4층 사무실 복도로 들어섰는데 이 복도 안에 까치 한 마리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까치는 계속해서 복도의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지요. 아마도 유리창을 보지 못하고, 밖의 정경만을 보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긴 전 세계적으로 유리창에 부딪쳐서 죽는 새의 숫자가 1년에 1억 마리나 된다고 하지요. 그 1억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바로 옆에 열려 있는 창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열려 있는 이 창문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려고 할 때에는 닫혀 있는 창문을 유리창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계속 머리를 부딪치며 고생하고 있는 것이었지요.

결국 교구청 직원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이 까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닫혀 있는 창문에 계속 머리를 부딪친다고 문이 열릴까요? 그 까치는 쉬지 않고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리기에 까치의 힘은 너무나 약했습니다. 사실 밖으로 나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문이 열려 있는 바로 옆의 창문을 보고 그 문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새의 눈 구조가 투명한 유리창을 볼 수가 없다고 하지요.

이 까치의 모습에서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혹시 제대로 보지 못해서 쓸데없는 행동만을 반복하고 있는 아닐까요? 물론 유리창을 보지 못하는 까치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문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아닌 길만 계속 반복해서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자기가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이 회심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운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한 위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도 회심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는 젊었을 때 이단에 빠지는 등 아주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는 이 길이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했으며,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모니카 성녀의 기도 덕분에 회심을 할 수 있게 되지요. 자신의 길이 잘못되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위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또한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탐욕과 방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주님께 나아가는 길에 들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자신이 찾아가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혹시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기에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 꽉 막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위선에서 벗어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서 자유로울 때,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분명히 활짝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에쿠니 가오리).



차 한대가 거꾸로 오는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은 견인중..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
 

청소를 전혀 하지 않는 아주 게으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친구 한 명이 꽃다발 하나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웠지요. 그래서 집에 가지고 가서 화병에 꽃아 두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화병이 너무 지저분한 것입니다. 화병을 깨끗이 닦고 그 안에 꽃다발을 꽂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상이 너무 지저분한 것입니다. 책상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한 책상이 되자, 이번에는 방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 전체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한 방이 되었을 때, 그는 집 안 전체를 정리 정돈하기 시작합니다.

청소를 전혀 하지 않는 게으른 이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친구 한 명이 준 꽃다발 때문이었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지 않을까요? 바로 내가 베풀고 나누는 행동 하나가 세상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받기만 원하고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세상에 바뀌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베풀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말은 곧 세상을 바꿀 힘과 기회가 내게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도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잘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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