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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받았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31 조회수47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복음: 마태오 25,14-30






권능의 그리스도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ev) 작, (1410-1415)

 


     <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받았다. >

            저희 성당 옆에는 수녀원에서 하는 노인 요양원이 있고 대부분은 많은 장애를 지니신 분들입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미사를 드려드리는데 알아들으시는 분이 거의 없으십니다. 본래 지난주에 미사를 했어야 했지만 눈병으로 한 주 연기를 해서 오늘 미사를 드려드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녁 성경공부 강의를 마치고 오늘 오전에 일본으로 떠나는 동기 신부와의 마지막 모임이 있다는 것이 늦게야 생각이 났습니다. 수원에 가서 모임을 하고 내려오면 매우 늦을 것이고, 그래서 눈병이 아직 낫지 않아서 미사를 더 연기해야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은 눈병은 거의 나아가고 있었지만, 오전에 피곤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예비신자 한 분이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할 일도 많은데다 피곤했지만,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미사를 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데다, 또 수녀님이 은근히 같이 가자고 하시는 것 같아서 병자방문 준비를 하고 나갔습니다.

가는 도중 예비신자교리 봉사자분이 그 분은 근래에 들어서 집에 우환이 많아서 남편이 성당 나가는 것을 매우 반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매님은 너무 소극적이라 말도 잘 안하시는 편이고 우울증 증세도 있는 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 지는 신자분들도 익히 잘 아십니다. 그래서인지, 그리고 저의 잘못이겠지만, 봉사자분도 제가 예비신자 병자 방문 가는 줄 모르고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만큼 신자 한명 한명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사는 것이 저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병실에 들어섰는데 얼굴도 익숙하지 못한 한 자매님이 일어서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줍게 인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바로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제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얼굴도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치시지는 않고 타박상으로 마무리 될 듯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또 남편이 교통사고가 났었고, 아들이 희귀병에 걸렸었는지 등을 울고 웃으시면서 열심히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돌아오면서 그 자매가 그렇게 행복하게 또 목소리도 크게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들 하셨습니다.

자매님은 지난 주 교중 미사 때 제가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가장 처음으로 악수하면서 해 주셨던 것을 가슴에 새기고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저는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그 분은 자신의 손을 처음으로 제가 잡아주었다는 것이 매우 큰 기쁨이셨던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고 안수를 해 드리는 내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 정도의 교통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오려고 하지 않았겠지만, 오늘 우연찮게 방문해 보면서 사제라는 존재의 힘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제라는 존재가 신자들에게 이만큼 큰 기쁨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저조차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방문하려고 했을 것이고, 악수 한 번 해 주는 것도 신자 한 분에게 이렇게 기억에 남는 일이 된다면 모든 분들의 손을 잡아드렸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하느님이 주신 능력이 매우 작다고만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게을러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양원 어르신들이 한 달에 한 번 제 얼굴을 보기 위해 기다리셨지만 이 번 달은 이렇게 지나버리게 한 것에 대해 더욱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종에겐 다섯 달란트, 어떤 종에겐 두 달란트, 어떤 종에겐 한 달란트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달란트의 차이를 심리적인 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주셨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적게 주셨다고 불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주셨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열심히 활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반면, 적게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불만으로 노력도 안 하고 게을러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 한 달란트만 받아서 불만으로 가득차서 그것을 땅에 묻어놓기만 했던 사람은 주인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주인을 무서운 짠돌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짠돌이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다른 종들보다 적게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재산을 불려드릴 필요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자연적으로 게을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받았습니다. 나의 미소가 자살하려는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나의 작은 관심이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우울증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여 게을러지는지, 게으르기 위해서 적게 받았다고 믿으려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받은 능력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믿지 못하면 자연적으로 게을러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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