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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상청보다 정확한 어머니 무릎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1 조회수410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어머니 역시 천국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막내아들 신부가 있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천국은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를 지켜 주시는 하느님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느님을 통해서 나의 행복이나 기쁨을 원하고 요구하는 일이 많다. 기상청보다 정확한 어머니 무릎

풍류를 즐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멋스럽고 풍치 있는 일에 잘 어울리고 논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분 이어서 자주 나들이를 다니셨다. 내가 생각해 봐도 풍류란 아무나 즐기는 것이 아니라 풍류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져야 하고, 풍류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며, 풍류를 즐길 만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뜻에서 보면 아버지는 풍류를 즐길 만한 자질과 조건을 모 두 갖추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정성껏 다려놓은 모시 한복을 입 고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문 밖을 나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지 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멋져 보여서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날이 따뜻해지고 꽃 피는 봄이 오면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 을 모아 꽃구경을 가시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 아버지는 저렇게 구 경도 많이 다니면서 왜 어머니는 한 번도 모시고 가지 않는지 원망 스러운 적도 있었다. 물론 옛날에는 부부동반으로 외출하는 관습 이 없었고, 하물며 아낙네의 꽃구경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어머니를 모시고 가셨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내 바람일 뿐 아버지는 그저 당신 풍류에나 신경을 쓰셨다. 어머니는 아예 그런 일은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나들이를 가시려고 한복에 중절모자를 챙기며 들떠 계셨다.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맑던 날 씨가 무슨 변덕인지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날씨 가 흐리면 무릎이 아프시곤 했는데, 틀림없이 비가 올 것 같았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은데 그래도 나가시려고요?" "기상청에서 비 온단 말은 없었으니까 가야지." "한복 풀 빳빳하게 먹여 놨는데, 그래도 입고 나가실 거예요?" "당연하지."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은데 고집을 피우시네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출을 하셨다. 그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하늘만 바라보면서 "오늘 비가 안 와서 이 양반이 비를 맞지 않아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셨다. 꽃놀이 안 데려간다고 원망하기는커녕 남편이 나들이가 즐겁기를 바라는 것 이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저렇게 누군가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구나 그런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아버지의 허물을 바람기까지 모두 감싸안을 수 있을 만큼 큰 사 랑을 가진 어머니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풀 빳빳하게 먹인 한복을 입고 밖에 나가서도 기죽지 않고 큰소리 떵떵 치며 남자의 기세를 떨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든든한 백을 믿고 기가 살아나는 이치가 바로 그와 같지 않은가.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 있 었기에 막내아들인 나는 하느님 앞에 당당히 사제로 나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예상대로 어머니의 무릎은 기상청보다 더 정확했다. 아 버지가 나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30분도 채 안 되어 폼나게 차려입은 한복은 온데간데없고 아버지 는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오셨다. 결국 아버지는 점퍼와 바지로 갈아입고 우산을 들고 다시 나갔 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물론 꽃놀이를 망친 아버지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어머니와 아버지 의 성격 차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 관광을 다녀오시면 그날 있 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시시콜콜 다 얘기한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 아무개가 무슨 말을 하는데 당신이 다 알고 있는 얘기 를 하더라는 둥, 거길 가 보니 경치가 어떻고 사람들 인심이 어떻 다는 등등 마치 관광 해설을 하면서 '이건 몰랐지? 저건 몰랐지?' 하고 어머니 약까지 올리곤 했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을 잠자코 듣고 나서 총평을 내리곤 하셨다. "얘길 듣고 보니 오늘도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잘난 척도 꽤 하셨네요. 어디 가서든 얘길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남의 얘기도 듣고 그러세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런 논평을 하는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날 사람들 앞에서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았 을까 걱정이 되어, 앞으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보여야 할 어른으로 서의 표양이나 대인 관계에 대한 작은 충고들이었다. 그런데도 아 버지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잘난 척은 무슨 잘난 척을 했다고 그래. 그저 그렇다는 거지." "잘난 척이 별건가요?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거예 요. 당신 잘 모르면서 아는 척 우기는 버릇 있잖아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정곡을 찌르면 늘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 지만, 어머니가 바른 말을 하니 그저 꿀 먹은 벙어리밖에 될 수 없 다. 이미 이야기 도중에 자신의 실수가 다 터져 나온 것을 주워담 을 수 없으니 발뺌을 할 수도 없다. 반면 어머니의 경우는 달랐다. 어머니는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후에도 그저 잘 다녀왔다고 한 마디만 할 뿐, 대체로 입을 열지 않 은 편이었다. 그런 경우 늘 조바심을 내는 쪽은 아버지였다. 아버 지는 어머니가 그런 곳에 다녀오면 본인 성격대로 소감 발표를 자 세히 하기를 원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가 말을 하지 않으 면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여셨다. "오늘 성지순례는 어땠어? 뭐 특별한 거 있었어?" "그냥 다 그렇지 뭐, 성지가 별다른 곳인가요. 그저 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순교자들에게 기도하고 왔지요. 그게 다예요." "아니 그래도 성지마다 다른게 있을 것 아니겠소. 오늘 갔던 성 지가 어땠는지 자세히 이야기 좀 해 봐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재촉에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씀하셨다. "내가 돈 내고 다녀온 성지 이야기를 공짜로 다 들으려고 해요? 그럼 성지에 다녀온 나나, 안 다녀온 당신이나 똑같잖아요. 그렇게 궁금하면 당신도 돈 내고 다녀오세요." 어머니의 말씀은 풍치 좋은 곳만 놀러 다니지 말고 성지순례도 다녀오시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머니는 성지순례에 가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와 묵념으로 일관하셨기에 보이는 것, 들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순교자를 묵상하고 기도하는 성지순례는 구경 다녀온 것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성지순례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다녀오셔도 아 버지에게 별로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마음의 깊이를 겉으 로 드러내는 일에 익숙지 않은 어머니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 러나 한편으로는 두 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티격태격하면서도 잔정이 들고 깊은 정분을 나누며 평생을 해로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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