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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주일-영혼이 깨끗한 사람들/양 승국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1 조회수547 추천수8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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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근식 엮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영혼이 깨끗한 사람들



한 무리 관광객들이 단체로 소풍을 떠났습니다. 버스는 호수와 산, 전원과 강이 어우러진 아주 아름다운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 한 가지는 그 버스에 커튼이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나 대화주제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상석에 앉힐 것인가?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인가?

참으로 한심한 모습들이지요. 차창 밖으로는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엉뚱한 주제를 두고 말다툼하느라 여행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런 불필요하고 소모적 논쟁만 계속할 것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부차적인 것, 지극히 지엽적인 것에 몰두하느라 정작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쉽게 놓치고 마는 인간의 보편적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우선적인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분하게도 죄인인 우리를 찾아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스런 하느님 얼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시고 인간세상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일이 아닐까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지속적으로 만나 뵙고자 열린 가슴으로 광야로 나가는 일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핵심이나 본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바리사이들, 교만할 대로 교만해져 진지한 자기반성이나 쇄신작업과는 담을 쌓은 율법학자들, 그래서 결국 빈껍데기뿐인 신앙인으로 전락한 유다인들을 엄중하게 질책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정결례와 관련된 세칙의 부당함과 비인간성을 경고하십니다. 정결례는 한마디로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규칙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정결례에 관한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뤘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규칙이 규칙을 낳고, 또 규칙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규정들이 늘어났는지 탈무드 제1부의 6권 전체가 '씻는 규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 별것도 아닌 손 씻는 예식은 목숨 걸고 지켰지만, 정작 중요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에는 소홀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통 유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죄 없다고, 깨끗하다며 어깨에 힘을 주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엄청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사람들, 그래서 정결예식을 그리도 소중히 여겼던 유다인들의 행태를 바라보며 '정녕 깨끗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침ㆍ저녁으로 매일 두 번씩 샤워를 빼먹지 않는 사람이 깨끗한 사람일까요?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해가며 매일 사우나를 가서 열심히 때를 빼는 사람이 깨끗한 사람일까요?

마음은 사악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몸만 깨끗하다고 어찌 그 사람을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내면은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데, 외면만 잘 닦고 광냈다고 어찌 그 사람을 깨끗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안에서 깨끗한 사람은 내면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입니다. 내면을 잘 다스리는 사람, 영혼의 정화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 마음을 잘 갈고 닦는 사람입니다.

묵상할수록 아름다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을 모신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체험이 결국 우리를 지속적 영혼의 정화 상태로 이끕니다. 하느님 체험이 우리를 내적 자유에로 이끕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에,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하실 때, 그 아무리 힘 있는 자들 앞에서라도 우리는 떳떳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그분께서 머무실 때 그 어떤 혹독한 외부 상처로부터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영성생활이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속 생활과 관련된 자질구레한 규칙들로 자기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을 향해, 우리 인간 동료를 향해, 그리고 우리 하느님을 향해 다가가기위해 발돋움하는 작업입니다.

양 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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