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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견의 여정 - 9.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1 조회수331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1코린1,26-31 마태25,14-30

 

 

 

 

2012.9.1



발견의 여정

 

 

 

 

 


2012년 런던 장애올림픽 개막식에서 전신마비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0) 박사의 연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발견의 여정’이란 제하의 연설 중 두 대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별들을 보고 당신 발밑을 보지 마라(Look up at the stars and not down

at your feet).”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표준도 보통사람도 없지만 우리는 똑같은 인간정신을 나누고 있다(We are all different, There is no such thing as a standard or run-of-the-mill human being but we share the same human spirit)."

 

 

 


내 밭 밑의 현실을, 환경을, 나의 약점이나 단점 등

나의 부정적인 것들을 보지 말고 눈 들어 하늘의 별들을, 하느님을,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하느님께 눈길을 돌리라는 의미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래야 순조로운 발견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어떤 표준의 사람도 없고 모두가 보통이 아닌

자기만의 탈렌트를 지닌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하나가 비상하고 특별한 탈렌트를 지닌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각이 존엄과 품위의 인간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기사를 읽던 중 ‘계몽이란 주제로 열린 공연’이란 말마디 중

계몽으로 번역된 영어‘Enlightenment’ 단어가 반가웠습니다.

그러니 이 영어단어의 뜻은 ‘계몽’보다는 ‘깨달음’이 적절합니다.

깨달음이란 영어 단어에 보면 ‘빛(light)’ 이 들어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깨달음의 빛’임을 봅니다.

하여 광화문(光化門)이란 뜻도 영어로 하면

‘깨달음의 문(The Gate of Enlightenment)’이란 유홍준씨의 설명에

공감했던 적이 생각납니다.

 


깨달음의 빛 안에서 끊임없는 발견이 이루어집니다.

발견의 여정은 바로 깨달음의 여정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여정에 쓰라고 주어진 우리의 에너지이며,

이런 에너지를 쏟을 통로가 막혀 있기에 무수히 발생하는 성범죄입니다.

 


우리의 여정은 끊임없이 자기를,

자기의 탈렌트를 발견하고 활용해 가며 자기를 발견해 가는 여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는 다 다릅니다.

이래서 공동체의 풍요로움입니다.

서로의 텔런트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공동체 일치의 지름길입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자기의 탤런트를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부러워할 것도 우월해 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 받은 탤런트를 알아 최선을 다해 활용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원하시며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를 하십니다.


또 업적의 양이 아닌 질을, 과정의 충실도를 보십니다.

 

다섯 탤런트를 받아 다섯 탤런트를, 두 탤런트를 받아 두 탤런트를 남긴

이들은 자기를 알았고 각자 받은 탤런트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5/5, 2/2이나 똑같은 1이라는 질입니다.

두 경우 다 주인께 똑같은 칭찬과 더불어 미래를 보장받습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위 두 종은 자기발견의 여정에 충실했던,

하여 자기를 알았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진정 싸움은 남과 경쟁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우월감이나 열등감,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지 않고 불퇴전의 용기로

부단히 자기가 받은 탤런트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기발견의 여정에 항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반면 마지막 한 탤런트 받은 종은 자기를 몰랐습니다.



자기 발견의 여정에 소홀한 결과 좌절감, 열등감에 무너져 내린,

자기 싸움에 패퇴한 종입니다.

 

마침내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

쓸모없는 종이라 지탄 받으면서 실패인생으로 마감합니다.


하느님은 더도 덜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1탤런트에 충실하여 1탤런트를 남겼더라면

이 종 또한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내 받은 탤런트를 발견하여 잘 활용할 때 점점 풍요로워지는 영적 삶입니다.

우리가 받은 탤런트는 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자랑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자각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겸손입니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아닌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다음 고백은 바오로의 고백이자 동시에 제 탤런트를 잘 활용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고,

  있는 것을 무력하게 하시려고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리석고 약하고 없어도 받은 탤런트에 충실할 때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하느님은 그들에게 풍요로운 은총을 내리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께 받은 탤런트를 셈 바치는

우리 모두 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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