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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마음의 작은 연못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1 조회수565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2주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복음: 마르코 7,1-8.14-15.21-23





책을 보는 성모자


보티첼리(Botticelli, Sandro) 작, (1483), 밀라노 폴디 페촐리 미술관 

 


     < 내 마음의 작은 연못 >

          얼마 전에 한 신자분이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성수를 떠서 저에게 보여주시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 이상해요, 얼마 전엔 성수물이 맑았는데 조금씩 색이 흐려지더니 지금은, 보세요, 아주 뿌옇게 되어버렸어요.”

실제로 쇳가루 같은 것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색이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항아리 청소를 자주 해 주지 않아서 그런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녀님이 알아서 하겠거니 믿고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수녀님과 몇몇 봉사자들이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물론 성수 항아리 청소를 자주 해 주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수녀님 말로는 항아리 청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했고 이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많은 의견은, 제가 그 성수를 축복할 때 소금을 적게 넣어서 성수가 부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새로 성수를 축복할 때는 수녀님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소금을 올려놓으셔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분은 신부님이 기도를 너무 많이 하셔서, 성수가 변한 거 아닐까요?”라고 해서 모두가 웃었다고 합니다. 뭐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의견이었습니다.

성수의 색이 이상해지자 신자 분들은 그것을 퍼가기 꺼려하셨고 성수는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더 색이 짙어져서 거의 붉은 색을 띄어갔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느 날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놀랍게도 항아리 바닥엔 성수를 푸는 두레박 바가지가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이 성수를 푸다가 바가지를 빠뜨렸고 그것이 가라앉아 시간이 지나면서 바가지에 칠해져있던 색소가 빠져나가면서 그런 노랗고 붉은 색이 나오게 된 것이고, 성수 양이 줄어들면서 그 색이 짙어져 바닥이 더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수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있고 그 위치가 약간 어두운 곳이라 바닥은커녕 그 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성수를 뜨시는 분들이 바닥을 당연히 보셨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바가지는 항아리 색과 비슷하였기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면 그것은 나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내가 안 좋게 반응을 하게 되면 그것이 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해도 나는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면 그것이 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밖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무감각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초민감한 것입니다.

사랑은 무감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매우 민감하게 만듭니다. 성모님도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여 예수님께 청을 올리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모님도 당신들의 사랑에 비해서 세상이 주는 조롱과 아픔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향한 세상의 모든 죄들은 그분들의 마음에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부패할 때까지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으로 마음 안을 살피시고 무언가 있으면 바로바로 꺼내어 그 속에서 부패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그때 소화시키며 자신 안에 쌓아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썩어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등이 되어 자신을 더럽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면입니다. 바로바로 용서하시고 바로바로 풀어버리시고 바로바로 소화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밝은 빛으로 항상 살피고 정화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자그마한 연못에 물고기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먹이와 공간은 충분하지가 않았습니다. 한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가 없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더 넓은 공간에서 많은 먹이를 먹으며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물고기의 바람대로 다른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다른 물고기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죽은 물고기 때문에 작은 연못이 썩어가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 물고기도 결국 숨이 막혀 죽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 안에도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그 연못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늘이 비치는 깨끗한 물에만 사십니다. 연못은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정화되지 못하고 쌓이게 되면 썩어버리게 됩니다. 만약 연못이 썩어버리게 되면 그 분은 내 안에서 더 이상 사실 수가 없습니다. 연못을 썩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바로 정화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에페 4, 26-27)

, 무엇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쌓아놓는다는 것은 더 큰 범행이 저질러지도록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는 것이란 뜻입니다. 어떠한 커다란 범죄도 우발적인 원인으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며칠 전 초등1학년 여자 어린이가 전남 나주의 한 가정집에서 밤사이 자고 있던 이불채로 납치되어 성폭행당하고 범인이 버리고 간 강변에서 발견되었다 합니다. 나체 상태였고 대장이 파열되는 신체손상을 입었다 합니다.

이번도 나영이 사건처럼 술에 만취해 범행이 저질러 진 것이라고 합니다. 조두순씨도 만취된 상태에서 범행이 저질러졌다는 이유로 12년 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술에 만취한다고 해서 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마치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불만으로 가득하여 머리를 떨어뜨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런 범행을 저지를 정도로 자신이 더럽혀지게 자기 자신을 방치해 두었기 때문에 그런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범인도 평소에 일본에서 제작된 아동 음란물을 즐겨보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에 자신 안에 쌓이는데도 그냥 방치했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저희 본당 성모님 앞에 잔디를 깔았습니다. 어떤 신자분이 잔디밭에서 잔디와 구별도 잘 되지 않는 잡풀을 뽑고 계셨습니다. 저는 벌써 잡풀이 자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분은 잔디를 깔 때 흙이 모자라 밭에 있는 흙을 뿌렸더니 그 흙 안에 숨어있던 잡풀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잘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들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언젠가는 잔디밭이 잡풀들로 뒤덮이게 될 것이었습니다. 미리미리 뽑아주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갈 것이 뻔 하지만 항상 잘 살펴서 뽑아주면 그것들이 크게 잔디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자신이 원하는 아무 실험이나 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집 구석에 거미가 많이 사는 곳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거미줄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물론 거미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에 그 거미 수의 반씩이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엔 아무 거미도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들도 매 주 집을 새로 짓는 것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꾸준히 청소하는 사람에겐 마귀가 발붙일 틈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손을 씻고 그릇을 씻는 등의 외적인 문제만을 트집 잡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행위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감정들에 더 주위를 기울여야합니다. 안 좋은 생각들을 잠자리까지 가져가지 말고 그 이전에 바로 용서하고 잊고 소화시키는 습관을 드려야겠습니다. 비록 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나를 온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생각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꾸준한 고해성사, 이것이 우리 자신을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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