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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찬미하라 - 9.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2 조회수38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2.9.2 연중 제22주일

 

신명4,1-2.6-8 야고1,17-18.21ㄴ-22.27 마르7,1-8.14-15.21-23

 

 

 

 

 



하느님을 찬미하라

 

 

 

 

 


이제 9월부터는 본격적인 하느님 찬미의 계절, 기도의 계절입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별들은 더욱 영롱히 빛납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 마음을 높고 푸르게, 우리 영혼을 별처럼 빛나게 합니다.


오늘 새벽하늘은 참 고왔고

달은 유난히 밝았으며 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초롱초롱 맑게 빛났습니다.

 

문득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이란 불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낮의 해는 하느님 얼굴, 밤의 달은 하느님 얼굴’

제 나름대로의 엉터리 해석에도 지극히 만족했습니다.

불자들이 해와 달에서 부처의 얼굴을 보듯 저는 하느님의 얼굴을 봅니다.

 


온 누리를 환히 비추는 낮의 태양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대지를 위로하는 달은

그대로 하느님의 얼굴을 상징합니다.

저절로 온 누리에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됩니다.

 


비상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세상의 진선미(眞善美)를 통한 하느님의 진선미 체험입니다.


새벽 자연의 참되고 좋고 아름다움은

그대로 사랑스런 하느님을 환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기쁨에 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사랑으로 바치는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를 관상가와 신비가로 만듭니다.

주일 성무일도 중 아침노래도 온통 찬미로 넘쳤습니다.

 


“보내시는 당신 얼에 그들은 창조되어,

  누리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

 


“하느님 영광은 영원하소서.

  하느님은 이루신 일 기뻐하소서.”

 


“내가 살아있는 한 주님을 노래 하리이다.

  이 목숨 있는 한 내 하느님 기리오리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주님은 나의 힘, 내 노래이시니, 당신이 나를 구하셨도다.”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당신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여, 주님은 드높은 창공에서 찬미 받으소서.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그 하신 일 놀라워라, 주님을 찬미하라.

  그지없이 크오셔라 주님을 찬미하라.”

 


하느님 찬미에서 샘솟은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시편저자는 진정 관상가요 신비가임을 깨닫습니다.

시편의 영성을 내 영성으로 하여 끊임없이 찬미를 바칠 때

우리 역시 관상가가, 신비가가 될 수 있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참 기쁨과 행복의 샘은 하느님 찬미뿐입니다.

하느님 찬미를 통한 하느님 자랑보다 신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찬미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하느님 사랑해야 찬미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하느님 찬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행복의 열쇠는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모두입니다.

늘 깨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갈림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잊어, 하느님 자리에 ‘돈’이 들어와 파생되는 온갖 불행입니다.

세상 우상들에 빠져 살기에 마음은 지리멸렬 분산되어

온갖 심신의 질병이요 사라지는 평화와 기쁨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와 열정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 수 있습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게 최고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 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이 하느님을 찾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스스로 자초한 화요 불행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빛의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내려옵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시공을 넘어 시공 안에 영원한 현재로 우리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 자체가 우리에겐 위로와 치유가 됩니다.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간곡한 충고를 들어보십시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의 힘은 하느님의 힘이고, 말씀의 생명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말씀의 빛은 하느님의 빛이며 말씀의 맛은 하느님의 맛입니다.

말씀을 통한 하느님의 위로와 치유요 정화와 성화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말씀을 통해 주님 맛을 들일 때 저절로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세상의 맛들로부터 초연한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의 영적전쟁의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이 영적전쟁터입니다.

우리 안의 괴물과의 싸움입니다.

오늘 마르꼬 복음을 통해 환히 들어나는 괴물의 정체입니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바로 이게 우리 안 흉측하기 짝이 없는 괴물의 얼굴입니다.

도대체 한 마음에서 선과 이런 악한 괴물이 공존한다는 게 신비요

우리의 영적전쟁의 엄중함을 말해 줍니다.


이래서 영적전쟁에 하느님 말씀의 무기보다 더 좋은 게 없고

영적질병의 산물인 괴물을 치유하는 데

하느님의 명약인 말씀보다, 성사보다, 기도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말씀을 통한 치유, 말씀을 통한 정화와 성화가

악한 에너지를 하느님을 찾는 에너지로 바꾸고

괴물의 성향을 하느님을 향한 선한 성향으로 바꿉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주님 말씀과 성체의 은총입니다.

 

 

 

 

 



셋째, 하느님의 말씀을 꾸준히 실행하십시오.

 


말씀의 완성은 실행에 있습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말씀도 실천에 옮겨야 말씀의 육화를 통한 치유와 구원입니다.

 


머리에서 발까지의 거리는 참 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계명이나 말씀도

머리에,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손과 발끝에 까지 이르러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살아있는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말씀의 실행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할 때

저절로 내적치유와 변화가 뒤따릅니다.

 

그러니 영육이 살기위해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을

백언(百言)이 불여일행(不如一行)으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듯이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실행하는 것이 낫습니다.


모세 역시 하느님 말씀의 실천을 극구 강조합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들은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하고 말 할 것이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

저절로 지혜와 슬기가 넘치는 삶이요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는 삶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 역시 말씀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권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 깨끗하고 흠 없는 마음은, 신심은

곤궁 중에 있는 이들을 선행으로 도울 때

또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말씀의 실행을 통해

비로소 검증되는 마음의 순수와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입니다.

 

 

 

 

 



연중 제22주일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을 잘 찬미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셋째, 하느님의 말씀을 꾸준히 실행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당신께 사랑의 찬미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치유와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시편31,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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