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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아[20]노아의 저주[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3 조회수1,096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는 또 말하였다. “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러나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어라.
하느님께서는 야펫에게 자리를 넓게 마련해 주시고
셈의 천막들 안에서 살게 해 주소서.
그러나 가나안은 야펫의 종이 되어라.”(창세 9,26-27)’

노아의 ‘셈의 하느님이신 주님 찬미’는
셈의 계보에서 인류의 구원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는 원 복음에서의 그 ‘후손’이신
그리스도가 셈의 계보에서 탄생될 것임의 의미이다.

이는 노아가 셈에게 직접 내리는 그의 축복이 아니고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이다.
축복은 노아에게는 이미 떠나 있었다.
먼 훗날 하느님의 축복 속에 인류의 구원자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을
노아는 하느님께 저주와 함께 비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느님께 막내에게 많은 자식을 주실 것을 강구하였고
그의 계보도 드러나게 하셨다.
야펫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시조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리이스인들의 시조로 여긴다.
암튼 야펫은 셈의 장막에 기거하며 셈의 축복,
즉 그리스도의 구원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셈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천막에 사셨다.
가나안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족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굴복시켰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강제 노동을 당했다(여호 17,13).
 

이제 세상은 노아의 저주의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성령이 이끄는 믿음이 지배한다.
세상은 천차만별이다.
가끔은 저주의 대상인 악이 설치기도하고 선이 이끄는 평화의 노래가 울리기도 한다.

우리는 아담의 죄와 노아의 저주와 함께하며 산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노아가 찬미한 셈의 하느님을 믿는 이다.
 

노아는 홍수가 있은 뒤에 삼백오십 년을 더 살았다.
그가 사는 동안 그의 가족은 계속 번창하였고 세상은 하느님의 뜻대로 발전하였다.
노아는 모두 구백오십 년을 살고 죽었다.
홍수전의 세월이 그의 일생의 삼분의 이였다면 삼분의 일은 홍수 후였다.

사실 우리는 노아의 후손들이다.
노아의 홍수로 이 세상은 다 변했다.
다시 말해 천지개벽이었다.
이 대변화 이후에도 노아의 후손에게서 자식들이 태어났다.
셈과 함과 야펫의 족보대로이다.

성경은 이 세 아들을 선조로 하는 백성 전체를 연계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노아는 첫 아들 함을 제외한 두 아들에게만 하느님께 구원의 기도를 청하였지만
하느님은 셋 모두에게 강복하시어 그들이 많은 후손을 보게 하셨다.
이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종족이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창세 12,3).
 

노아의 막내 야펫에게는 일곱 아들과 일곱 손자가 소개된다.
[계속해서 노아 21편 '노아의 자손들'이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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