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어머니 역시 천국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막내아들 신부가 있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천국은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를 지켜 주시는 하느님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미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느님을
통해서 나의 행복이나 기쁨을 원하고 요구하는 일이 많다.

교황님께서 지켜 주신 돈


                          우리 옛 시골집을 생각해 보면 대문이란 이름뿐이지
사실상 없었다. 혹시 문이 있다 하더라도 명목상의 문일뿐, 집은 늘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집주인이 멀리 외출을 할 때도  대문을 닫아 놓을 뿐 잠그지
않는다.  대문에 빗장이 걸리는 것은  밤에  잠을 잘 때 정도지만 완
벽하게 문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문은 잠겨 있더라도  뒤뜰로 
가는 쪽문은 늘 열려 있다. 사실 쪽문을 방비한다는 것이 그저 걸쇠 
하나 거는 정도이기 때문에 방범 효과가 거의 없기는 하다.
   바로 우리 고향 마을 집 대문 얘기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여행을 떠나  동네가  텅 빈 날이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이 
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도둑이 그날 마을에 들어와  온 동네를 
몽땅 털어가 버렸다. 우리 집도 도둑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어머니는 마을에  도둑이 들었다는 이
야기를 하셨다. 많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돈도 잃어버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와이셔츠 상자를 이용
하신다. 유학시절 내가 보낸 사진과 편지, 성당주보와 기도서, 바느
질할 때 쓰는 물품 등을 각각  상자에 구분하여 넣고 겉면에 번호를
적은 다음 내용물의 이름을 써 놓았다.
   물론 이것은 상자를 열어 보지 않고서도  물건을 쉽게  찾기 위해
서였다. 어머니는 세 번째 상자에 돈을 넣어 두고 그 위에 '돈' 이라
고 써 놓으셨다. 도둑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뒤지다가 세 번
째 상자를 가져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도둑은 어쩌면 친절하
게도 돈 상자를 일러 준 주인에게 고마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도둑은 지혜로웠는지 어머니가 돈이라고 써 놓은 상자
만 들고 갔을 뿐,  다른 귀중품 상자는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
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상자에 써 놓은 물품 내용 중에는 돈이라는
상자 외에는 가치 있는 것들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집들은 집안이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이불이며 옷가지까
지 죄다  헤집어 놨기 때문에 뭐가 없어졌는지  확인을 하는데도 시
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도둑맞은 경위를 한참 설명하신 후에 혹시 밖에 인기척
이 있나 조용히 살피시더니 나를 아랫목에 모셔놓은 성모상 쪽으로
끌어당겼다.  성모상은 나무로 만든 받침대 위에 있는데,  어머니는
그 밑에서 둥글고 큰 접시를 하나 꺼내셨다.
   접시 안을 들여다보니  하얗고 두꺼운 종이  네 모서리가  안쪽에 
딱 맞게 닿아 있어 접시의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종
이를 꺼내 뒤집어 보여 주셨는데, 다름 아닌 교황님의 상본이었다.
   그런데  교황님의 상본을 꺼내어 보니  접시에는 만 원권 몇 장과
천 원권 여러 장이 놓여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도둑이 든 이후에
돈을 놓는 자리를 상자에서 접시로 바꾸었고,  교황님께  돈을 지켜
달라고  교황님 사진으로 덮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
머니가 돈을 도국맞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생각대
로 교황님께서 돈을 지켜 주신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교황님의 상본이  함께 들어 있는 그릇,  어머니에게는  그것보다 
든든한 은행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