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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5 조회수877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5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I must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because for this purpose
I have been sent.
(Lk.4,43)


제1독서 1코린토 3,1-9
복음 루카 4,38-44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글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세 번 놀라게 된답니다.

첫 번째, “어머나, 내가 천국에 왔네. 웬일이니?”

두 번째, “어머나, 저 친구도 하늘나라에 왔네. 말도 안 돼. 저 친구가 얼마나 나쁜 놈인데 이곳에 올 수 있어?”

세 번째, “웬일이니, 웬일이니... 내 친한 친구 **가 안 보여. 그 친구 죽은지가 언제인데? 이곳에 없으면 어디에 있는 거지? 지옥?”

그러면서 이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올 거란 사람은 안 보이고, 없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있다니……. 그러니 함부로 내 잣대로 판단하지 마세요.’

사실 하늘나라로의 초대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예수님 당신께 데리고 온 질병을 앓고 있는 모두에게 일일이 손을 얹으시어 고쳐주시지 않습니까? 누구는 착하니까 고쳐주고, 누구는 악하니까 문전박대하며 그냥 내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도 제외 없이 당신만을 찾아온다면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즉, 병의 치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전능하심으로 말씀 한 마디로 쉽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을 얹으셔서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고쳐주시면 예수님 스스로도 편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고쳐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는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철저히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방해가 있습니다. 그 방해는 절대로 거짓을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마귀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소리치지요. 분명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을 때 하는 이 말을 통해서 혼돈이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즉, 아직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꾸짖으며 막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와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지요. 예수님만 있으면 자기들은 아프지도 않고 배고프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동은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방해하는 욕심일 뿐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사랑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모습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당신을 채점하러 올 때, 그가 보는 것은 당신의 승패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경기를 했느냐다(그랜트랜드 라이스).



이렇게 웃으면서 기쁘고 즐거운 그리고 행복한 하루를 만드세요.



나의 진정한 목표는?
 

우리들은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표는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마치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고 해서,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 부부가 결혼을 했는데, ‘우리 50년만 함께 살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 목표만 도달하면 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세우고 있는 목표는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 목표가 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만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목표만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특히 그 목표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일 때에는 더욱 더 공허함만을 가져다줍니다. 한 증권회사 간부가 자살하며 유서를 남겼다고 하지요.

“얘들아! 사랑한다! 아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해 살아왔다. 누구보다 빨리 승진했고, 누구보다 빨리 돈을 벌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 아빠는 너무 허전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먼저 간다. 너희는 아빠처럼 살지 말라.”

주님께서는 언제나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시고 스스로 당신께서도 그러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엉뚱한 것들을 나의 목표로 세워서 행복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을까요?

진정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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