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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살 버릇 백 살 간다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5 조회수552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내 눈물로만 오시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나는 귀여운 막내아들이었고 사랑하는 연민이었으며 존경하는 신부님이었다. 그저 쳐다보고만 있어도 그리운 사랑. 세 살 버릇 백 살 간다

구약성경에는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 되지만 주책없는 아내는 등뼈 갉아먹는 벌레와 같다"(점언 12, 4)는 말씀이 있다. 명심보감에는 "현명한 아내는 남편을 부귀하게 만들지만 어 리석은 아내는 남편을 비천하게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부부 관계는 우리 부모님밖에 없다. 나 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부부가 어떤 이유로 싸우고 성격적으로는 어떻게 부딪치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다. 물론 명심보감의 말대로 남편과 아내가 지혜로우냐 아니냐에 따 라 상대방의 처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부부간에 가장 긴장해야 할 대목은 부부싸움의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체로 '바가지를 긁는다' 는 말은 부부 사이에 쓰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 면 아내가 남편을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해대는 모습이 떠오른다. 부부들 말을 들어보면 남편은 왜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지 모르겠 다고 하고, 여자들은 남편들이 바가지 긁게 만들기 때문에 긁는다 고 한다. 우리 옛말에 '가랑잎은 솔잎을 보고 부스럭거린다고 불평 한다' 는 말이 있다. 가랑잎은 저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모르고 남이 부스럭거리는 것을 불평하는 데서 나온 말인데, 그 말은 곧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속의 티끌만 본다' 는 뜻과 같다. 사실 바가지를 긁는다는 말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쓰인 말은 아 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박을 두 쪽으로 쪼개어 말려서 바가지로 썼는데, 오래 사용하다 보면 아무래도 안쪽에 때가 묻기 마련이다. 그러면 모가 나지 않은 돌로 긁은 후 물로 깨끗이 씻어서 썼다. 옛 날 아낙들은 때로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우물가나 시냇 가에 앉아서 때 묻은 바가지를 긁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이에 버금가는 바가지 예찬론을 갖고 계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께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바가지를 긁는 것은 다 당신을 위해서예요." 아버지는 튼금없는 어머니 말씀에 손사래를 치셨다. "뭐가 나를 위해서 하는 잔소리야. 날 위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바가지 좀 긁지 마." 그러자 어머니는 당신이 왜 잔소리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셨다. "당신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적당히 잔소 리를 들어야 한대요. 나도 잔소리하고 싶지 않은데, 당신이 건강하 고 오래 사시라고 서비스하는 거예요. 그러니 고맙단 말이나 하세 요." 그리고 어디서 들으셨는지 사람은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 어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하셨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내는 남편의 결점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 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결점 없는 남편은 위험한 감시자가 되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서로 결점이 있으면 싸울 때 물고 넘어질 고리가 있지만, 한쪽이 아무리 해도 흠잡을 것이 없다면 싸움은 처음부터 승패가 결정된 셈이다. 아무튼 어머니는 논리에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 사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어머니에게 잘못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 히려 아버지의 큰 실수만큼은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 모든 일들이 누구의 탓도 아닌, 당신의 팔자라고 받아들이 셨던 것이다. 누가 누구 덕에 잘 되었다든가, 누구 때문에 잘못 되 었다는 말을 들어도 "누구 덕도 아니고 누구 탓도 이닌 거야. 그저 자기가 타고난 팔자인 거지" 라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나이가 들고 바가지를 긁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큰 허물을 매 번 들춰내며 탓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살면서 겪는 자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바가지에는 한 가지 어머니만의 특징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잘못을 고치려고 하 는 잔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잘못을 고쳐야겠다고 작정하고 잔소리를 하 게 되면, 나중에 잘못이 바로 잡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싸 움이 되기 때문에 아버지의 버릇이나 습관에서 비롯된 것들을 고쳐 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웃의 잘못은 지적할 수 있지만 시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시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그래서 어 머니는 어느 순간 화가 나면 그냥 한 마디 할 뿐이다. "당신의 그 버릇 때문에 내가 속이 터지네요." 그 버릇 때문에 속이 터진다는 입장을 아버지에게 밝혀 두는 것 이 상대가 그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신다고 했다. 화가 나는 것을 쌓아 두면 스트레스가 되니까 그것은 풀어야 하지만, 버 릇은 사실 고치기가 힘들다는 점을 잘 아신 것이다. "네 아버지가 버릇을 고치면 우리 속담 먼저 고쳐야 하지 않겠 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은 80까지는 살 수 없는 시대에 나온 속담이다. 그래서 죽어도 못 고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제 는 80을 넘어서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금 시대에 맞추어서 '세 살 버릇 백 살 간다' 라고 고쳐야 맞지.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은 드므 니까 결국 죽어도 고치기는 어렵다는 이야긴데, 그렇게 어려운 버 릇을 내 잔소리로 어떻게 고칠 수 있겠니."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더라도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는 수준에서 조절해야 한다고 하셨다. 잔소리의 수준을 조절한다 는 말은 잔소리를 감정적으로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냉 정한 상태에서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이치에 맞는 말이다. 대체로 우리가 말싸움을 할 때는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말의 칼 날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런 격 정적인 감정이 솟구치면 잠시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이성적인 상태 로 만들어 놓고 상대에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자신도 좋 고, 듣는 당사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잔소리 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고집과 편견이 심해지면서 잔소리꺼리가 많아진데다가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 지혜가 많아졌고, 판단과 기준 을 나름대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을 잔소리꾼으로 몰아붙이는데, 그 시기에 노인들이 가장 많이 해야 할 일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일 이라고 한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이니 모두 가 좁쌀영감과 꼬마할멈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잔소리쟁이 마누라라고 불평만 하는 남편들은 평생 고치 기 힘든 버릇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팔자 덕에 잔소리를 듣는 것이 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고, 백 번을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나이 든 '큰아들' 처럼 남편을 키우는 아내들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는 속담을 가슴에 새겨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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