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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 수련의 세 차원이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5 조회수361 추천수8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영성수련의 세 차원

 

영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영성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뭔가 심오한 천상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삶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성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들도 많이 하십니다. 성녀 데레사나 바오로 사도의  체험은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수련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체험이

주어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체험이 없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 수술이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손수 이끌어 가신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으로 똘똘 뭉쳐진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으셨기에 주신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그런

체험이 없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영성수련은 그런 어떤 것이 아니고 내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삶의 실천적인

지혜가 영성수련의 묵적입니다.

 

삶의 경험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

영성수련은 말 그대로 수련이 필요하고 수련을 통해 쌓아져 가는 것입니다.

 

1단계는 관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내 삷에서 지혜가 성장하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의 실상, 나의 reality를 알아야 수련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갈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2단계는 나를 넘어서서 하느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나를 알고 하느님을 향해 나가는 것인데 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내 안에 갇히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 의미는

나를 알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걸림돌이 됩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 안에서 보면 다른 가족들은

다 아는데 나만 나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자기 중심으로 나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관계 안에서 시작됩니다.

바뀌려고 애쓰는 모습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바뀌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이 베드로 사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성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영적인 성장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어떤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떤가를 알 수 있는 것은,

1. 근본적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나? 존재로서 감사함을 느끼는가?

2.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겸손하게 들으려 하는가?

가족 관계 안에서는 정직하게 자신이 드러납니다. 그때 드러난 '나'가

'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시작하면

됩니다.

 

직업, 돈 등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무엇인가

소명처럼 일해 갈 때 서로 기쁘고 관계도 좋아집니다.

하는 일에 집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본인이 잘 알고 있다고

느끼면 애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자마자 넘어서지 못합니다. 알면서도 또 그렇게 하고

싶어지는 내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왜 수련을 해야 할까?

1. 하느님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다 가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나를 연민하고 계시며 그런 나를 새로워지기를

원하시며 끊임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것을 통해 관계 안에서

겪려와 위로를 주시며 일하고 계십니다.

 

2. 나 때문에 ;

그렇게 애쓰시는 하느님께 응답하기 때문에 그렇게 성실하게 대해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내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수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곧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때문에 수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련의 세 차원

(나를 깨닫고 나를 넘어서는 세 차원)

1. 나 개인의 차원

2. 공동체의 차원

3. 생활의 차원

이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세 차원을 그릇을 받치는 삼발이로

비유합니다. 곧 균형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중에 한 개만 소홀해도

넘어지게 됩니다.

 

이 세 차원에서 나를 아는 것과 나를 넘어서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곧 수련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 나를 알고(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나의 실상 나의 리어리티를 알고 그런 나를 넘어서는 것.

 

* 하느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하느님 안에서 인간 존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그것을 담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이 어떤 관계인지를 끊임없이 알려줍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느님이신 당신이 인간이 되어

오실 정도로. 창세기와 복음서를 통해서 알려 주십니다.

이걸 알아가는 기도가 성서기도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기 때문에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올바른 신심)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래 귀중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관계 안에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보십시오.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면(누군가와 늘 비교하며 살고 있다면)

아는 것과 사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믿음이 있다고 해서 삶으로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나를 이끌어가는 힘(하느님의 영과 악한 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밖에서 오는 것들(생각, 느낌, 충동 등) 은 그 자체로 죄는 아닙니다.

이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죄입니다.

 

* 나의 영적 패턴을 알아 감;

사람마다 휩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참을 수 없는지? 또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그 사람은 또 있습니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러므로 내 안의 어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힘들어

하는 것이 있다? 왜 하느님은 계속 보내시나?

거기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나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 자유롭게 하시려고 하시나?

 

* 치심; 마음을 다스림

1. 나 개인의 수련 차원 안에서;

그런 마음(생각, 충동, 느낌 등)이 일어날 때 그것 알아 차리고

다스려가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매 순간 수련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여려움이 생기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있고 하느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특히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이끌어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심은 내 의지로만 되지 않습니다. 은총을 청하십시오.

이런 마음조차도 내가 주인이 되지 못함을 우리는 압니다.

 

2. 공동체의 차원 수련 안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

가족의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못 보는 것을 공동체의 차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내가 드러나고 있음입니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형제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말을 해 주는 형제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공동체를 통해서 수련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부딪칠 수 있습니다. 그때 공동체의 차원에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교회의 차원에서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가리옷 유다가 떠나고 열한 제자가  한 사람을 뽑는데 어떻게 뽑으셨는지

아십니까? 제비뽑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제비뽑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은 누가 나오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온전한 신뢰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해 된 다음에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도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3. 생활 차원 안에서 수련;

지역, 사회, 직업, 단란트, 정치, 경제 등 그런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느님 안에서 보고 있는가?

 

내 삶의 모든 것이 선물이라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선물 안에는 선물 주신 분의 뜻이 있다는 것. 이것 살피면서

생활해 나가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나의 실상을 아는만큼 하느님 안에서 이겨내고 애쓰게 됩니다.

그렇게 애쓰는 과정을 사람들이 지켜보고 변화되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메마름도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마지막 책 [빛이 되어라]에서 비참함, 공허함도

찾아 온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사막도 관통해 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인정해 가며 자신의 일을 해 나아가며 할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몸의 수련(지혜)도 필요합니다;

공허감, 귀찮아짐 등 이런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겠다고

주저 앉지만 먼저 몸을 움직여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바뀝니다.

이게 지혜입니다.

 

우리 몸도 하느님께 온 것이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믿음을 갖고 몸을 움직이십시오. 

청소를 해 보십시오. 마음이 잡힙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공허감이 있을 때 더 웃었다고 하셨습니다.

 

*영성수련;

- 하느님을 알아보는 눈이 있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발견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를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 안에 일하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해 가는 것이 활동중의 관상

입니다.

 

우리는 삶이 기도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삶이 기도인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기도를 안 하면 안 됩니다.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려면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사생활이 필요합니다. (미사, 영성체)

삶이 기도가 되고 싶으시다면 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상은 한국CLC 9월 부산 길벗 강좌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강사님은 신광식 알로시오 국장님이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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