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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동전화응답기로 생긴 오해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6 조회수562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내 눈물로만 오시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나는 귀여운 막내아들이었고 사랑하는 연민이었으며 존경하는 신부님이었다. 그저 쳐다보고만 있어도 그리운 사랑. 자동전화응답기로 생긴 오해

예전 영화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 를 보면 죽음을 앞 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집안에 있는 전자제품들의 설명서를 적는 장면이 있다. 젊어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아버지였기에 그나마 전자 제품과 친숙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복잡해지는 제품들을 사용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큰 글씨와 그림으로 간단하게 제품 사용법을 적는 아들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 있다. 젊은 사 람들은 이렇게 쉬운 것을 노인들은 왜 잘 못할까 생각할지 몰라도, 해가 갈수록 날로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가 나이를 먹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연세도 연세지만, 농사 아니면 나물 캐는 일만 주로 하시던 어머 니는 더욱 전자제품이나 기계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그나마 집 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전화였는데, 그 전화조차도 자식들에게 서 걸려오는 것만 받는 정도였다. 예전 분들 중에는 전화요금을 아끼기 위해 여간 큰일이 아니고서 야 전화를 걸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전화가 와도 '용건만 간단히'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것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전화를 길게 할 수록 요금이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서울 신학교에 있을 때에는 매주 한 번 부모님을 찾아뵈었고, 인천 교구 청에 있거나 인천 신학교에 있을 때에는 2주에 세 번 정도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 나는 부모님이 연락을 하시기 전에 먼저 전화를 하 고 찾아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전화를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받 으셨다. 전화는 주로 아버지가 먼저 받으시기는 하지만 사실 부자 간에는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일은 별로 없다. 나는 일단 아버지에 게 안부를 여쭙고 건강이 괜찮으신지 확인한 후에 어머니를 바꿔 달라고 말씀드린다. 그럴 때 어머니는 전화를 받으면서 "잘 지내는지 알았으면 됐지, 무슨 할 이야기가 더 있어?" 라고 말씀하신니다. 그래서 "아버지하 고는 인사만 나눴고, 진짜 이야기는 어머니하고 나눠야죠" 했더니,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들으라는 듯이 "그렇지, 아버지하고는 그저 국물이야기만 하고, 나하고는 건더기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곁에서 들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사실은 아들이 어머니와 통화하고 싶어서 전화를 한 것이고, 아버 지는 곁다리로 전화를 받아서 건네 주는 교환수 수준이니 내가 생 각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매번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 며 먼저 받으시니, '당신이 아무리 전화를 먼저 받아도 아들 신부한 테는 내가 더 진국이요!' 하고 시위하느라 그런 말을 일부러 아버지 들으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더구나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내가 어 머니한테 그런 말을 한 것처럼 오해를 할 것인데, 그럴 때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들과의 전화 문제만 갖고도 이렇게 아옹다옹하시는 두 분 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선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진 어머니의 말씀을 듣자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신부는 뭐가 그리 바빠서 전화를 받자마자 나중에 다시 하겠다고 하고 끊는 거예요?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했으면 무슨 말 을 하고 끊어야지." 나는 내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전화를 하자마자 본 론도 꺼내지 않고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어 떻게 된 건지 도통 영문을 몰랐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여쭤 보니, 어머니가 아침에 나에게 전화를 하셨는데 내가 강의 중인지라 자동 응답기에서 나온 녹음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 어머니는 전화기에서 아들 신부의 목소리가 나오니 으레 "신부 냐?" 하고 말씀을 하시려는 순간, 어머니의 말은 듣지도 않고 전화 를 못 받으니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 하고는 시끄럽게 삑 소리를 내 면서 끊었다는 것이다. 자동응답기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어머 니는 그저 아들이 굉장히 바쁜가 보다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던 것이다. "어머니, 제가 야박스럽게 어머니의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 아니 라 자동응답기라는 기계가 있는데 제가 자리에 없을 때 자동으로 녹음해 놓은 목소리가 나오니까 삑 소리가 나면 용건을 말씀하시고 끊으시면 돼요."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자동응답기란 말이 무엇이며 왜 신부가 지금은 전화를 할 수 없으니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 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시지 못한 눈치였다. 십 년이 아니라 몇 달 도 안 되어 초스피드로 변하는 문명사회에 적응하기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어머니의 전화를 야박스럽게 끊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자식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풀리셨을 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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