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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배워야 하는 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6 조회수853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복음: 루카 5,33-39






성체성사 제정


안젤리코 작, (1450),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 배워야 하는 이유 >

 

          중국의 가톨릭 선교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것은 635년 중동으로부터 온 네스토리우스파 선교사들로부터였습니다. 경교라 불린 네스토리우스파는 고위층을 중심으로 210년 간 전파되다가 845년에 있었던 당 무종의 반불교도 박해시기에 소멸되었습니다. 781년에 건립되어 현재 시안(서안)에 전시되어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만이 그들의 선교노력을 입증해 줄 뿐입니다.

그 후 원나라 때 가톨릭 선교사들이 파송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였던 몬테코르비노(John of Montecorvino)1294년 원나라에 도착해서 고아 소년들을 훈련시켜 현지인 성직자로 세우려고 시도하는 등 많은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1305년에는 6천 명의 세례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천주교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습니다.

중국을 복음화 시키려는 세 번째 시도는 명왕조(1368-1644) 말기에 예수회 소속의 신부였던 프란시스 하비에르(Fransis Xavier)와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사비에르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졌으나 예수회는 거기서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사들을 중국에 파송하였습니다. 그 중에 성공한 사람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신부였습니다. 그는 1582년에 중국에 처음 도착한 이후 18년 동안 많은 인내와 신중함으로 토착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중국 문화와 언어, 문학, 유교 전통 등을 공부하여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처럼 변화되었습니다.

1601년 드디어 북경에서 전도하게 되었고, 1610년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우정과 서양의 과학적 지식을 중국 땅에 전해 준 공로 때문에 그는 중국의 관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1584년에 천주교인이 단 세 사람이었는데, 1670년에는 27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는 중국인이 공자를 공경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용하며 선교적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천주를 유교의 상제와 비교하며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회가 중국에 정착함에 따라 이것이 '의식논쟁'이 되어 이들 사이에 내적 갈등이 야기되었습니다. 그것은 중국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위의 충돌로까지 발전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더 악화되어 급기야는 1724년에 옹정황제의 칙령이 공포되어 천문학자로서 베이징 정부에서 봉사하고 있던 소수의 예수회 과학자들을 제외한 모든 가톨릭 선교사들이 추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잘만 되었다면 지금 중국에 상상할 수 없는 수의 가톨릭 신자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조: 평강교회 PETRA 청년회 다음 카페]

 

저는 이런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상황을 볼 때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되면 그 새로운 환경을 받아 안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우리 자신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아이처럼 살 수 없는 일이고, 직장에 갔으면서도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단식하는 것이 좋은 줄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시대와 상황에 적용할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있는 잔치분위기에서도 단식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교회에서 제사를 반대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끝나니 제사를 허용하는 시대와 장소에 부합되지 않는 판단에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경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줄 알았던 역사에 길이 남을 공의회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전 세계에서 미사는 라틴어로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비본질적인 면이었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충분히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교회는 그 때까지 그것이 본질인 줄 알고 바꾸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세상과 단절되고 섞이지 말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 술을 담는 새 부대처럼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함을 깨닫게 해 준 공의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미사 할 때 빵과 포도주 대신 막걸리와 떡으로 미사를 해도 될까요, 안 될까요? 제가 일반 대학교 다닐 때 가톨릭학생회에서 천주교를 알리기 위해 막걸리와 포도주로 미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절대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본질입니다.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멜키체덱이 빵과 포도주로서 봉헌한 것이,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대사제 멜키체덱으로서 빵과 포도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제사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빵과 포도주뿐만 아니라 십일조도 우리 교회가 지켜나가야 할 변하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면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에 비해서 가톨릭은 십일조는 전혀 강조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바뀌어도 되고, 무엇은 절대 바뀌지 말아야 하는지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무엇을 바꾸려 해도 두려워하며, 혹은 바뀌지 말아야 하는 것도 바꾸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불과 몇 년 전의 내 자신의 세포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4년이면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바뀐다고 합니다. 모든 세포가 다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나의 본질적인 면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것을 잘 구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시대에 잘 적응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먼저 교회의 정체성, 즉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변화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 즉 새로운 부대가 되기 위해 무엇은 변해도 되는지 명확히 알아 두려움 없이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알아야 두렵지 않고 변화에 자유로우며 시대와 상황에 잘 적응하여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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