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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7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7 조회수945 추천수18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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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루카5,33-39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신앙의 본질, 핵심, 알맹이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밥 먹듯이 질타당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보여준 어리석은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종교의 본질, 핵심, 알맹이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데 1차적인 관심을 두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외적이고, 부차적인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 하느님을 만나는 일, 하느님 사랑 안에 푹 잠기는 일,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을 사랑하는 일...사실 이런 것들이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외적인 것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로 나아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뒷전이고 자신들이 규정해놓은 수많은 틀에 따라 정확하게 기도가 이루어지는지 여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바치는데 있어 정성이나 마음,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저 입으로만, 그저 기도의 의무를 채우기 위해서만, 남에게 내가 이렇게 기도를 잘 바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형식적인 기도를 기계적으로 되풀이 해왔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단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단식이라는 것 좋은 것입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인 식욕을 스스로 통제하여 보다 명료한 정신 상태로 하느님께 나아가겠다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단식이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필수 교과목은 절대 아닙니다. 자기 말해서 단식이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있어 도움을 주는 방편 내지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마치도 단식이 최고인양, 단식이 최종 목표인양 여기며 떠들썩하게 자신들이 행하는 단식을 자랑했고 목숨을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뭐가 뭔지 개념파악이 잘 안 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 던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수님 당신이 이 세상에 머무시는 짧은 공생활 기간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은총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인해 은총의 역사는 앞으로도 지속되겠지만,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했던 꿈같은 ‘허니문’의 순간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단식은 그때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머무시는 은총의 시간 동안은 더 이상 울며 애통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그토록 염원해왔던 지복직관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식도 그 기간 동안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기도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 가까이 다가서는 일,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이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기도와 단식, 하기는 참 많이 했습니다. 틈만 나면 기도하고 틈만 나면 단식했습니다. 서로 많이 하기 위해, 더 강도를 높이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거룩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기도와 단식에는 자신들만 있었지 하느님이 사라져버렸기에 전혀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거룩한 사람들은 절대로 거룩한 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단식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바치고 있는지 떠벌이지도 않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보다 깊이 하느님을 만날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 뜨거운 사랑 안에 오래 오래 머무를까, 어떻게 하면 또 다른 하느님이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듬뿍듬뿍 안겨드릴까 고민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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