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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8 조회수534 추천수6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내 눈물로만 오시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나는 귀여운 막내아들이었고 사랑하는 연민이었으며 존경하는 신부님이었다. 그저 쳐다보고만 있어도 그리운 사랑.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찾아 온 세상을 방랑하지만 결 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러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집 은 자신이 원하는 것의 출발점이며 회기점이 된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방황해야 할 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의 하느님을 향한 끝없는 바람도 먼 로마 유 학길을 돌아서 결국은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회귀했고, 내가 찾던 성모님의 모습도 어머니의 형상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집은 내 여정의 출발점이었고, 그 출발점에는 어머 니가 계셨다. 나는 사제의 꿈을 이루고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을 만 났을 때 바로 내가 먼 하늘에서만 찾던 하느님의 사랑을 어머니를 통해 집에서 찾았다.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검단에 있는 호우누님 집으로 옮기 기 전까지 40년 이상을 고향 집에서만 사셨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서 흙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집에서 시멘트 벽에 슬레이트 지붕으 로 바뀌었지만, 그곳은 부모님의 일생이 담긴 삶의 둥지이자 우리 형제들의 새 요람이기도 하다. 우리 집 뒤로는 작은 동산이 있고 뜰에는 장독대와 펌프 우물, 옆으로는 작은 텃밭이 가꾸어져 있는 그야말로 작은 초가삼간이지 만, 아무리 좋은 고대광실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곳이다. 명심 보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집이 천 칸이라 해도 밤에 내가 눕는 자리는 여덟 자일 뿐이고, 논밭이 바다처럼 넓어서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내가 하루 에 먹는 것은 고작 두 되일 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적 행복은 한없는 욕심으로도 모 자라지만 실제로 마음의 행복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데서 움직인 다는 뜻이다. 나는 어려서 내가 걸려 넘어져 울던 문턱이 있고 뛰 어놀던 마당과 뒷산이 있으며 잠자리를 잡던 작은 텃밭을 보면서 큰 행복을 얻는다. 역시 집은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작고 초라한 집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다. 그것은 초라한 집에서 사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을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 하는 것 은 집에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고, 또 집이 나의 궁전인 것은 어 머니가 거기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연세 가 드시면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신부 갈 집이 없으니 어쩌지?" 어머니는 내가 사제가 된 후에도 돌아올 집을 걱정하고 계셨다. 그 집에는 그저 단순한 돌과 흙과 나무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 어 머니가 있어야만 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짚어 말씀하셧다. 어머니 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그렇다. 어머니는 집의 영혼이다. 마치 우리의 몸이 영혼의 집이듯 집의 영혼은 어머니가 된다. 집의 영혼이 어머니라면 우리 교회의 영적 어머니는 성모 마리 아다. 성모님은 깊은 슬픔과 뼈아픈 고통 중에서도 아들 예수의 십 자가 처형을 끝까지 지켰다. 그때 예수님은 성모님을 향해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라고 요한 사도를 가 리키며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마치는 순간에도 어머니 가 아들을 잃는 고통을 염려하여 어머니에게 아들이 곁에 항상 머 물러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독실한 성가정을 이루었고 거기에 막내아들을 사제로 만들었으 니 어머니는 마땅히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세속의 부모 의 마음을 아주 떨쳐 버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나머 지 사남매는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으니 걱정이 없지만, 막내 아들은 당신이 돌아가시면 집이라고 찾아올 곳이 없어지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바로 그 말 한 마디로 요약된다. 어 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자식으로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가슴 한편이 저릿해 왔다. 대부분의 사제들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내 집이 아직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 면 내집이 없어진다. "그러니 내가 더 오래 살아야지." 어머니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오직 막내아들 신부가 찾아올 집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어머니가 살아야 할 이유였던 것이다. 세 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들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라는 사실을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유가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 일 어느 누가 '내가사는 이유는 어머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있을까? 혹시라도 사제관에 자주 들락거리면 아들 신부에게 누 를 끼치게 될까 두려우 인천 큰 누님 댁에 오셔도 전화로만 안부를 믈으시던 어머니, 어머니도 다른 보통 어머니들처럼 보고 싶을 때 는 아들네 집에 떳떳하게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어머니는 그렇게 평소에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기 도로만 아들을 후원하고 사랑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내가 아무리 자주 찾 아오셔도 된다고 사제관 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한 번도 불쑥 찾아 오신 적이 없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기에, 나는 오시라는 말 씀을 드리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먼저 찾아가 뵈었다. 노쇠한 어머니에게 가장 큰 기쁨은 아들이 찾아오는 것이고, 또 그 이상의 효도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어머니를 찾아가서 뵙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그 이상의 효도도 따로 없었다. 그 래서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어머니에게 나는 이 세상의 외눈박이 사랑이었고, 어머니 또한 내게 외눈박이 사랑이었다. 그 밖에는 나 와 어머니의 사랑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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