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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9 조회수612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9일 연중 제23주일



People brought to him a deaf man
who had a speech impediment
and begged him to lay his hand on him.
He took him off by himself away from the crowd.
He put his finger into the man’s ears
and, spitting, touched his tongue;
then he looked up to heaven and groaned, and said to him,
“Ephphatha!” -. that is, “Be opened!” --
(Mk.7,32-34)


제1독서 이사야 35,4-7ㄴ
제2독서 야고보 2,1-5
복음 마르코 7,31-37

저는 보통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묵주를 들고 나갑니다. 저녁식사를 한 뒤에 걸으면서 소화도 시키고 동시에 묵주기도를 하기 위한 것이지요. 영적 그리고 육적 건강을 위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지난달과 달리 9월에 들어서면서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어둑어둑하다가 금방 캄캄해지더군요.

그날도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의 공원과 골목길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약간 소리를 크게 하면서 묵주기도를 외웠지요. 그런데 바로 제 앞에서 어떤 여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며 뛰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소리 내어 묵주기도를 했는데, 어두워서 그 학생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왜 이 여학생이 전력질주를 하며 뛰어갔을까 싶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웬 아저씨가 빠른 걸음으로 자기를 쫓아오는 것 같고, 특히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쫓아오는 것 같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래서 자기와의 간격이 가까워지니까 속도를 내어 마구 뛰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요즘에 흉악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러나 제가 그 여학생을 어떻게 하려고 쫓아간 것일까요? 그리고 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여학생이 힘차게 죽어라 뛰었던 것은 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저와의 간격을 멀리하기 위해 뛰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시지 않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생활하면서 주님께서 좀 알아서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요.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길로 알아서 이끌어주시고,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들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피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당신께서 찾아갈 때 깜짝 놀라서 도망칠까봐 우리 스스로가 당신께 찾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주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마을에 있는 모든 환자들을 깨끗하게 치유해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기적을 베푸십니다. 또한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쉽게 말 몇 마디로도 충분하실 것을 직접 손을 대시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당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나야 할 때입니다. 세상 일이 바쁘다고, 어렵고 힘들다는 핑계를 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 만날 때 정말로 필요한 은총과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눈망울에 비친 사물이 그에게는 진실이다(찰리 채플린).


한달에 한번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어제 있었던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책,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이성과 본능. 이 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명작이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감사하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언젠가 아는 지인들과 등산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등산을 하면서 중간에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잠깐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우리 일행 모두가 편하게 쉴 만한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일행 모두가 쉴 수 있을 만큼 넓은 공터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곳에서 좀 쉬자고 하자, 한 분이 이야기합니다.

“신부님, 이곳은 그늘이 없어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더 괜찮은 곳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한참을 더 올라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늘은 있지만 뾰족한 바위가 많아서 약간은 불편한 곳을 발견했지요. 이런 곳이 또 나올까 싶어서 이곳이라도 쉬자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분이 “아까가 훨씬 좋았네요. 이곳은 앉아서 쉬기가 힘들잖아요. 그러면 조금만 더 올라가면 어떨까요?”라고 말합니다.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쉴 곳이 없었습니다. 쉬엄쉬엄 가자고 선택한 산행이었는데,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산 정상까지 오르는 아주 힘든 산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요. 좀 더 좋은 것을, 좀 더 많은 것을 찾으면서 우리들은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힘들어 할 뿐입니다. 사실 지금의 자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데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의 자리를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행복은 현재의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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