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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기 너희 하느님이 계시다(Here is your God) - 9.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09 조회수35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9.9 연중 제23주일 이사35,4-7ㄴ 야고2,1-5 마르7,31-37

 

 

 

 

 



여기 너희 하느님이 계시다(Here is your God)

 

 

 

 

 


오늘 강론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이모저모 생각하며 독서와 복음을 읽으며 묵상하다가

우리말이 아닌 영어 성경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위의 1독서

이사야서의 우리말에서 찾지 못한 것을 다음 영문에서 찾았습니다.

 


“Be strong, fear not!

  Here is your God.”

 


우리 말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에서 깨닫지 못한 것을

‘Here is your God(여기 너희 하느님이 계시다)’라는 말씀에서

전광석화, 눈이 번쩍 열렸습니다.

 


아, 이보다 반가운 복음은 없습니다.

저 멀리 ‘거기’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굳이 하느님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만 열리면 만나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러

여기 거룩한 미사전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여 강론 제목은 두 말할 것 없이

‘Here is your God(여기 너희 하느님이 계시다)’라는 구절을 택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존경하는 노 수도사제의 인터뷰 기사 중 첫 대목도 신선했습니다.

 


-당신이 가보고 싶거나 살고 싶은 곳은? 그 까닭은?-

 


“내가 살고 싶은 곳은

  바로 여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우리 수도원이다.

  나는 늘 있는 곳에 만족한다.

  현재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만족하게 하고 있다.

  다만 몸이 쇠약해지면 왜관수도원 양호실에 가고 싶다.”

 


‘나는 늘 있는 곳에 만족한다.’는 고백이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답고 진솔한지요.


언제나 지금 여기 계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일 때

늘 있는 곳에 만족한 삶입니다.


오늘은 여기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당부를 나눕니다.

 

 

 

 

 



첫째,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기 하느님이 계시기에 세상 그 누구도 무엇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의 원초적 정서요

요즘 같이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두려움보다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고 위축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하여 수도원 십자로 돌 판에 새겨져 있는 주님의 말씀에

모두가 공감하며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얻곤 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에 참 많이 나오는 주님의 말씀이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인간 모두의 보편적 정서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기에 사람입니다.


하느님만이 영혼의 불치병과도 같은 두려움을 치유합니다.

 

알고 보면 대부분의 두려움은 환상의 어둠입니다.

하느님을 떠날수록 증폭되는 두려움의 어둠입니다.

빛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때 사라지는 두려움의 어둠입니다.


다시 노 수도사제의 인터뷰 기사를 나눕니다.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은 뒤에 받을 심판이 두렵다.

  그렇지만 그보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그분이 주실 무한한 행복을 기대하니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기쁨이 앞선다.

  이 세상의 두려움은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기쁨이 앞선다.

이 세상의 두려움은 없다.’는 고백이

우리에겐 얼마나 큰 위로요 힘이 되는지요.

아름답게 사신 노 수도사제의 고백이 참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여기 너희 하느님이 계시다.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빛으로 지금 여기 임재하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갈 때

사라지는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에 내적평화와 기쁨의 삶입니다.

 

 

 

 

 



둘째, 사람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여기 계신 하느님 빛 속에 사는 이들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떠나 어둠 속에 살 때 본능적으로 뒤따르는 차별입니다.

차별하는 사람입니다.

이 또한 우리의 원죄와도 같은 죄입니다.


세상에 차별이나 무시, 편애를 하지 않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차별이나 무시, 모욕, 편애가 참 큰 평생상처입니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해도

사람대접 받으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거창하거나 유별난 사람 사랑이 아니라 평범한 사랑입니다.

이웃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존중의 사랑, 차별이나 무시,

편애 없는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진정 좋은 사람은 차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잘난 자건 못난 자건, 부자건 가난한 자건, 건강한 자거 병든 자건,

강한 자건 약한 자건, 성한 자건 불구자건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나라가 공동체가

정말 좋은 공동체요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도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시고 편애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공명정대, 공평무사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는 우리 모두가 유일무이한 귀한 존재들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 역시 부자를 우대하고 가난한 자를 홀대하는 차별을

단호히 끊으라고 간곡히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귀먹고 말더듬는 보잘 것 없는 이에 대해

정성을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림처럼 선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숨을 내 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복잡한 절차의 치유과정인지요.


가난한 불구자에게 혼신의 사랑을 다하는 바로 이 모습에서

대자대비하신 차별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 환히 드러납니다.

 

 

 

 

 



셋째,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참 행복은 하느님 찬양에 있습니다.

하느님 찬양은 믿는 이들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하느님 찬양보다

두려움과 불안의 치유에,

차별이나 무시, 편애의 치유에 좋은 약은 없습니다.


하느님 찬양의 기쁨이 부정적 감정의 모든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찬양입니다.

 


하느님 찬양의 기쁨으로,

하느님 찬양의 맛으로 살아가는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신 수도승들에게

하느님 찬양의 하느님 일보다 그 무엇도 앞세우지 말라 하십니다.

하느님 찬양은 우리 수도승의 존재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시 노 수도사제의 고백을 나눕니다.

 


-당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며, 그것을 이룰 수 있었는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공동기도로

  날마다 하느님을 찬양하고, 교회의 선교사명에 협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수도원을 선택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누구나 하느님 찬양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찬양을 통해 하느님을 닮아감으로

저절로 치유와 변형이요 정화와 성화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에파타!(열려라)”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해 주신 주님은 역시

이 미사 중 ‘에파타!’ 하시며

우리의 귀를, 우리의 눈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입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화답송 후렴처럼 활짝 열린 영혼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우리들입니다.


찬양의 기적이 놀랍습니다.


바로 이사야서의 기적의 장면은

그대로 하느님 찬양으로 치유된

생명과 빛 충만한 영혼과 육신을,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하느님을 찬양은 활력의 샘이요 치유의 샘입니다.

하느님 찬양할 때 생명 충만한 영혼이요 육신입니다.


언젠가의 그때가 아니라 여기 지금 미사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하느님 찬양으로 불통에서 소통으로의 에파타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유활동을 통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는 세상 창조 때의

하느님의 고마우신 창조활동을 연상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우리 위해 하신 모든 훌륭한 일을 상기할 때

저절로 끝없이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양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차별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마음을 다해 당신을 찬양하는 우리를 치유해주시고

생명과 빛으로 충만케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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