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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대한 하느님의 등장[2]바벨탑[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1 조회수388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실 우리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벌을 내리셨다가도
반드시 자비의 표지를 보여 주셨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죽 옷을 입혀 보호하셨고
카인에게는 신변 보호용 표지를 해 주셨다.
라멕 이후 참된 예배를 일깨워 주셨고 노아를 그 무시무시한 홍수에서 살려주셨다.

하지만 이 바벨탑 이야기에서만큼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비의 표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그분께서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을 먼저 눈치 채시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라면서
초기에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에.
 

우리는 가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그분의 인도하심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비로소 뜨거운 감정으로 느낀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흩으심은 벌이 아닌 하느님의 인도하심이다.
이렇게 그분은 인간의 욕망의 속성을 미리알고
몸소 내려오시어 바로 잡아 주신 것이다.
천지창조와 대홍수를 두루 거치시면서
우리 하느님도 이제 눈치가 최소한 팔구 단은 되신 것 같다.

결국 주님께서는 신아르의 바벨탑을 그 완공을 해 보지도 못한 채 그만두게 하시고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바빌론의 야욕을 비판하기 위해서
저자는 본디 ‘밥 알라니’로 ‘하늘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벨’이라는 이름을
히브리 말 동사인 ‘발랄’(뒤섞다. 어지럽히다. 혼란하게 하다.)과 연계시킨 것 같다.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하느님의 심판 이야기이다.
이것으로 언어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리하여 민족들 사이에 언어가 혼란되어 각자의 해석을 달리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시면 이 모든 해석이 한 가지로 이해된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사도 2,4-6)’ 
 

바벨탑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 각자의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는 것의 속성이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룩하려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들만의 명예를 얻고자
그것을 과시하려는 오만의 잘못에 대한 지적이다.

우리는 각 민족의 고유한 언어를 통해서 하느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경배하면서
그분의 창조질서를 잘 보존해야한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온 땅으로 민족들을 흩어 버리셨지만
새로운 조화를 위해 아브라함을 준비하고 계셨다.
창세기시작 이래 온 땅으로 수많은 민족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제 위대하신 하느님의 등장으로 아브라함이라는 민족의 지도자가 부르심을 받는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과 구원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등장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성령의 강림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출발은 노아의 아들 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는 셈과 테라의 족보로 연결된다.

[계속해서 ‘위대한 하느님의 등장 3편’의 ‘셈에서 아브라함까지’가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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