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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은 돌아오지 않는다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1 조회수516 추천수8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가톨릭 사제가 쓴 눈물의 사모곡

나물할머니의 외눈박이 사랑
이찬우 신부

내 눈물로만 오시는 어머니 어머니에게 나는 귀여운 막내아들이었고 사랑하는 연민이었으며 존경하는 신부님이었다. 그저 쳐다보고만 있어도 그리운 사랑. 천국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가톨릭 성가 248장 '한 생을 주님 위해' 를 즐겨 부르시곤 했다. 이 성가는 성모님이 외아들 예수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린 것인데, 어머니는 이 성가를 무척 좋아하셨 다. 아들 신부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 예수님에 대한 성모님의 마음 과 같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한 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드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셨네. 어머니 마음 항상 아들에게 있고 예수님 계신 곳에 늘 함께 하셨네. 십자가 지신 주님 뒤따라 가시며 지극한 고통 중에 기도드리셨네. 주님을 위해 슬픔도 삼키신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 나는 이 성가를 들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찡해 온다. 성 모님을 생각하며 어머니가 부르시던 이 성가는 또한 아들 신부에 대 한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나도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 로 몇 단어를 바꾸어 이 성가를 불러본다. 한 생을 아들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들이 가는 길 함께 하셨네. 어머니 마음 항상 아들에게 있고 아들이 있는 곳에 늘 함께 계셨네. 이제 이 성가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노래가 되었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 다니게 되면서 나는 더욱 더 자주 어머니를 찾아갔 다. 그토록 건강하셨기에 모든 육체적 정신적 시련을 거뜬히 감당해 내셨던 어머니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몸은 아프 셔도 유머감각은 늘 잊지 않으셨다. 내 고향 양곡은 면 소재지여서 닷새에 한 번 장이 선다. 나는 어머 니가 퇴원하신 후에 집에만 계셔서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태워 드릴 테니 시장 구경을 가시지 않겠느냐고 여 쭈어 보았다. "싫어. 내가 시장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구경할 게 아니니." 어머니는 아프신 중에도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셨다. 어머 니의 말 속에는 늘 번쩍이는 위트가 넘쳤다. 어머니의 그런 재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하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거실에서 텔리비전을 보고 계시는데, 둘째 형님이 조금 늦게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형님은 어머니가 가려서 텔레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조금만 비켜 앉아 주세요. 잘 안 보여요." 형님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불쑥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온 놈이 자리를 옮겨 앉아야지, 먼저 자리를 잡은 내가 왜 비키냐?" 그 말에 온 가족이 '맞는 말!' 이라고 박장대소를 했다. 어머니 앞 에서 괜히 말을 꺼냈다가 둘째 형님은 본전도 못 찾았다. 그처럼 어 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 어 나는 틈틈이 기록을 해 두었지만 많은 부분을 놓쳐서 안타깝다.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기도를 배웠고, 무릎에서 사랑을 배웠고, 어머니의 가슴에서 신앙을 전수받았다. 말없는 어머니의 삶의 모습 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었고, 어려울 때마다 잘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긍정적인 사고와 밝게 사는 모습을 배웠다. 그 것이 어머니가 내게 침묵 가운데 가르쳐 준 큰 교육이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 셨다. 그 어머니의 기도가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것임을 추호도 의 심하지 않는다. 또한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은 나의 자화상이 되었으며, 어머니 의 기도 소리는 나에게 가장 큰 응원가가 되었다. 오늘의 내가 사제 로 살아갈 길을 만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제로 살 수 있 도록 이끌어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와 함께 한 나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의 혈육의 어머니이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한 여인이었으며 존경하는 여인이었다. 2007년 이른 봄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 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살 만큼 산 것 같구나. 이젠 저 세상에 가도 원은 없어." 나는 그때 어머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직도 정정 하신데---' 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옳았다. 그 말은 나이 든 분이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노인네가 죽고 싶다는 말은 처녀가 시집가고 싶지 않다는 말과, 장사가 밑지고 판다는 말과 함께 세 가지 거짓말 로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의 말씀은 이상하게도 당신의 죽음을 예비하 고 있으라는 뜻처럼 들렸다. 한 번도 비관적인 말씀을 하시지 않던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시니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를 위로하려고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더라고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 지 거기 한번 가면 돌아온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요."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얼마나 좋은 곳이면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겠냐. 그만큼 좋으니까 마냥 거기 눌러앉아서 돌아올 줄 모르겠지. 사람들이 정말 좋아서 안 돌아왔는지, 돌아올 수 없어서 안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머니의 말씀에 담겨 있는 한 마디의 의 문이 마음에 걸렸다. 하긴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부모 형제가 있고 가족과 친구가 있는 이 세상이 좋지, 어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 져 떠난 천국이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어머니 역시 천국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막내아들 신부가 있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천국은 언젠가 는 갈 곳이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본당에서 강 론 중에 신자들에게 물었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드세요." 하지만 손을 든 신자는 별로 많지 않았다. 다시 물었다. "천국에 가고 싶은 분, 손 드세요." 모든 신자들이 손을 들었다. 다시 또 물었다. "지금 천국에 가고 싶은 분, 손 드세요." 나이 많은 노인 몇 분만이 손을 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노환이 깊어 이 세상을 떠나셔야 하고 비록 천국에 가신다고 해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가장 먼저 어머 니를 다시 못 뵙게 된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천 국은 어디인가.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결국 내가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고 한 말은 나와 어머니의 슬픈 앞날을 예고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말씀대로 그 해 여름 8월 28일, 늘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어머니답게 새 벽녘에 부지런히 하느님 곁으로 떠나시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와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다. 비록 죽 음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 해도 어머니와의 이별을 태연 하게 맞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 없는 이 세상을 한 번도 상상 해 본 적이 없다. 바쁜 사제 생활 중에도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불쑥 찾아갔고, 전화도 드리고 안부도 전했다. 내 마음속에는 늘 어디를 가나 어머니가 분신처럼 자리 잡고 계셨다. 임종 바로 전날 오후, 신학교 가는 길에 누님 댁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를 드리고 성체도 영해 드렸다. 그때 어머니는 한 마디도 못하셨지만 내 말을 다 듣고 계신 것처럼 표정 으로만 의사를 전하시다가 끝내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그 눈물이 내가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 속에는 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어머니와 나만의 메시지가 오고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커 서 한동안 가슴이 텅 빈 상태로 살았다. 내가 할 일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눈물로만 어머니를 만나고 또 만나면서 마음을 잡는 길밖 에는 없었다. 사람들은 세월이 슬픔을 씻어 준다고 말했지만, 나는 시간이 흐를 수록 어머니가 내게 남겨 주고 가신 그 많은 말씀들이 새록새록 떠 올랐고, 그것들은 끝내 눈물로 바뀌었으며, 어머니가 흘린 눈물은 지금도 내 곁에 깊은 향기로 머물러 있다.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 직도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어느 쪽이더라도 어머니와 나의 그리움은 달라질 리가 없다. 어느 누군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으랴만, 나는 더욱 더 초연하려고 애썼다. 내 눈물이 어머니를 더욱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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