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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1 조회수887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Jesus departed to the mountain to pray,
and he spent the night in prayer to God.
When day came, he called his disciples to himself,
and from them he chose Twelve,
(Lk.6,12-13)



제1독서 1코린토 6,1-11
복음 루카 6,12-19

몇 해 전 여름, 강원도로 래프팅을 하러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전전날에 비가 많이 왔었기 때문에 물량이 많았고 또 유속도 상당히 빨랐었지요. 그래서 더욱 더 재미있는 래프팅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재미있게 급류를 타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배가 뒤집혀지면서 배에 타고 있던 우리 모두가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래프팅을 타다보면 자주 물속에 빠지기 때문에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제가 수영을 조금 하기 때문에 충분히 헤엄쳐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의 유속이 너무 빨라서 물살을 거슬러 수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힘차게 빨을 뻗으면서 수영을 해도 제자리걸음이더군요.

이렇게 유속이 빠를 때 아무리 헤엄치려고 해봐야 안 됩니다. 이때는 일단 물의 흐름에 나를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내려가면서 주위를 살피다가 몸을 의탁할 만한 것을 발견하여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내려 가다보면 물의 흐름이 느려져서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흐름에 내 몸을 맡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흐름은 바로 주님께서 이끄시는 삶인 것이지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께 맡길 때,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면서 하는 것과 주님의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행하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도 큽니다. 이는 곧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기도의 힘을 요청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합니다. 하긴 어떤 분은 이렇게도 말씀하시더군요.

“이런 일로 주님께 신경 쓸 일을 드려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도 잠깐 화살기도를 바치셨던 것이 아니지요.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를 뽑는 일, 물론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예수님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자리를 만드시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자리를 만들고 있었을까요? 이는 곧 얼마나 기도하면서 주님과 함께 했는가를 물어보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주님의 자리를 더욱 더 많이 만들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자기의 힘만으로 하는 일로 ‘둘(2)’을 할 수 있다면, 주님과 함께 할 때 분명히 그보다 몇 배 이상의 성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비우면 채워지고 낡으면 다시 새로워진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웨인 다이어).



연이은 축하식. 아직 축일은 멀었는데.. 직접 만들어주신 떡케익에 감동입니다.



너무나 각박한 세상

신부님들과 식사를 하다가 어떤 신부님께서 자신이 체험했던 것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어떤 자매님의 어린 자녀와 함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니까 귀엽다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고 해요. 그 순간 이 아이가 정색을 하면서 “왜 그러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이 신부님은 아주 못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요즘 워낙 흉학한 일들이 많이 생기다보니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각박한 세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긴 얼마 전에는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들 손자에게 주려고 음식을 챙겨 갔던 한 노부부가 “엄마가 집에 부모님 없을 때 아무에게도 문 열어 주지 말라고 했어요.”라면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아 한 시간 동안 현관 앞에서 아들 며느리를 기다리다 그냥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손자가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를 ‘남’이라고 인식할 만큼 세상이 각박해진 것이 아닐까 싶어 슬퍼집니다. 예전과 같은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세상, 우리 모두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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