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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2 조회수94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Blessed are you who are poor,
for the Kingdom of God is yours.
(Lk.6,20)


제1독서 1코린토 7,25-31
복음 루카 6,20-26

제가 오늘 밤부터 토요일까지 성소후원회 교구 임원 연수를 다녀옵니다. 그래서 내일 13일부터 토요일인 15일까지 새벽 묵상 글이 없다는 공지를 드립니다. 이 연수 기간이 보람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특히 성소자들에 대한 큰 힘이 될 수 있는 연수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어떤 형제님 한 분이 제게 인사를 하며 아는 체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낯이 익기는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물었지요.

“우리가 어디서 만났었죠?”

이 말에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신부님, 저 ***에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형제님은 제가 부제 때 1학년으로 입학했던 신학생이었던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갔는데,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지 예전의 풋풋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네요.

‘이 친구, 많이 늙었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지금 이 친구의 나이가 당시 부제 때의 제 나이보다도 훨씬 많은 것입니다. 하긴 그때의 입학동기들은 모두 신부가 되어서 지금 주임신부로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문득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 자신은 어른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솔직히 아직도 성숙한 어른의 모습보다는 미성숙한 모습으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님 앞에 그 누가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떳떳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후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 뜻보다는 내 뜻을 내세우며 살아가고 있으며,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은 모습만을 선택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욕심을 간직하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이 행복하고 또 반대로 불행한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서 전해주시지요. 바로 하늘에서 받을 상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결코 세상의 관점에서 보기에 행복한 것으로 보이는 부유함, 배부름, 웃음 등은 진정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이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통해서 행복의 길이 열립니다.

 

여행은 일탈이 아닌 다른 일상과의 만남이다(이강훈).



제 방의 좋은 텔레비전. 4일째 전원이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다. ㅋㅋ



텔레비전을 끄고서

지난 달, 솔직히 드라마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원래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한 두 편의 드라마를 보다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뻔한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또한 실제의 내 삶과는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보다보니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것만 보고서 하자.’라는 생각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자주 뒤로 미뤄집니다.

며칠 전 방 정리를 했습니다. 책장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하고, 그밖에 버릴 것들을 버리면서 깨끗한 마음을 내 안에 만들기 위한 준비를 했지요. 그리고 하나의 다짐. 텔레비전을 보지 말자는 다짐을 세웠습니다.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에…….

사실 텔레비전 말고도 해야 할 것들을 방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라서 그 방해하는 것들을 내게서 하나씩 치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인가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자기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나. 그러나 쓸데없는 것들에 집중함으로 인해서 최선의 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재 4일째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프로야구가 보고 싶고, 어제 했던 월드컵 예선전을 보고 싶어서 답답했지만, 며칠 보지 않았다고 이제는 참을 만 합니다. 대신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즐거움을 간직하게 되네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이 세상 안에서 최선의 자기가 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스스로를 방해하면서 최선의 나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불행한 내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최선의 자기가 되는데 방해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멀리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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