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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빵과 포도주는 십자가 희생의 상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3 조회수772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복음: 요한 3,13-17







아브라함과 멜키세덱의 만남



보우츠(Bouts) 작, (1464-1467), 루뱅 Sint-Pieterskerk

 


     < 빵과 포도주는 십자가 희생의 상징 >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줄 몰라서 복을 걷어찬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 영국의 메리 여왕은 가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허름한 옷을 입고서 혼자 거리를 다니곤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민정시찰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메리 여왕은 한 가게에 뛰어 들어가 우산을 좀 빌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다 찢어져 거의 못쓰게 된 우산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왕실의 마차가 그 가게 앞에 서더니 멋진 예복차림의 신하가 내려와 찢어진 우산을 주인에게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여왕 폐하께서 어제 우산을 잘 써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 찢어진 우산을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사례를 하고픈 마음도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단지 찢어진 우산만 돌려받을 때 가게 주인은 왜 좋은 우산을 주지 못했을까하며 후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필라델피아에 있는 작은 한 호텔에 도시 행사로 호텔마다 만원이라 묵을 곳이 없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노부부가 들어섰습니다. 이 호텔의 야간종업원은 여기에도 객실이 없지만 제 방이라도 괜찮다면,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쓰십시오.’라고 친절히 자신의 방을 내어주었습니다.

이 종업원의 친절을 눈여겨본 노부부는 다음날 아침 자신을 소개했는데 그가 바로 1976년에 19백 개의 객실을 갖춘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경영인, 존 제이콥 아스터였습니다. 그는 작은 친절을 베푼 이 야간종업원을 아스토리아 호텔의 총지배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하느님께 빵과 포도주의 제물을 바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에게 그 빵과 포도주가 필요해서일까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고 싶으시지만 그 은혜를 정의롭고 합당하게베풀고 싶어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바치는 정성이 빵과 포도주로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빵과 포도주는 오늘의 축일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자기봉헌을 의미하고, 신자들의 정성은 십일조와 봉헌으로 하느님께 평가됩니다.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 아브라함을 위해 축복을 빌어주기 위해 빵과 포도주를 바친 것처럼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 빵과 포도주를 바치셨습니다. 이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바치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곡식과 포도를 있는 그대로 바치지 않고 빵과 포도주를 만들어 바칩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땅에서 자란 곡식을 먼저 수확해야합니다. 땅은 자신 안에 뿌려진 씨앗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과 빛으로 곡식을 키워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씨를 성령으로 키워내어 그리스도란 열매를 맺어 세상에 내어주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성모님께서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바치신 것으로 상징됩니다. 그 분은 영혼은 인류구원을 위한 당신의 가장 귀한 아들의 봉헌으로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프셔야 했습니다.

수확했으면 빻아야합니다.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고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되도록 당신 자아를 부수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없애고 빵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순교복자회에서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밀가루로 빵을 만들 때 누룩과 같은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는 죄를 상징하고 빵을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밀떡에 누룩이나 다른 불순물을 넣지 않는 이유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깨끗한 제물이신 당신 자신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깨끗한 제물을 성령의 불로 달구어 당신은 고통스럽더라도 인간에게는 생명을 주는 빵이 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63장에서는 멀리서 오신 메시아가 백성의 죄를 대신해 당신 자신을 포도로 비유하며 밟아서 온 포도즙이 자신에게 튀어 온 몸이 피로 물든 것처럼 되었다는 예언이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당신 자신 안에 인간의 모든 죄를 넣어서 죽임으로써 당신은 피를 흘리시지만 세상의 모든 죄를 함께 사라지게 만든 것의 상징이 포도주인 것입니다. 포도주는 또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혼인잔치를 성사시켜주는 성령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원한 혼인의 계약을 맺고 한 몸이 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우리에게서 나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인간의 축복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 사건이 매일 미사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하느님께 바쳐지며 하느님은 그 보답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과,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계약의 피를 우리에게 선물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룩한 신비 안에서 우리는 위의 예화에서 우산을 빌려준 사람에 속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방을 내어준 사람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과연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고 있을 때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 성찰해봅시다. 성체를 영한다고 다 같은 은혜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카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우리가 봉헌하는 정도에 따라 합당하게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합당하게 받으려면, 그 합당한 봉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은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온전한 자기봉헌에 비해 우리는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해 줍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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