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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역 노인들의 학구열과 융통성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6 조회수416 추천수0 반대(0) 신고
              지역 노인들의 학구열과 융통성




지난 8월 20일 한 괴한이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 경내에 침입해 탱화와 벽화에 낙서를 하고 방뇨를 했다. 40대 남성인 이 괴한은 대웅전, 산신각, 조사전 등을 돌아다니며 매직으로 불화의 부처님 얼굴 등에 낙서를 했다. 또 불교서적들을 훼손하고, 청수 그릇(절에서 맑은 물을 담는 데 쓰는 그릇)에 소변을 보았다.

당시의 범행 모습은 경내에 설치된 CCTV에 그대로 찍혔는데, 신고를 받은 대구 동부경찰서가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보니, 개신교 목사였다. 순복음교회 교단인 ‘대한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소속 목사라는 사람이 천년고찰에 들어가 훼불을 하고 방뇨까지 한 것이다.  



▲ 노인들의 역사탐방 / 태안군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학교'의 노인들이 내포지역의 천주교 성지들을 대상으로 역사탐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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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목사가 동화사 훼불 사건 전후에 두 차례나 성당에서도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8월 17일과 23일, 자신의 집이 있는 울산의 한 성당에 들어가 마당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상을 쓰러뜨리고 용변을 본 뒤 배설물을 성모상에 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동화사 훼불사건으로 그 목사의 신병이 대구 동부경찰서에 확보되고 언론에 보도됐을 때 비슷한 사건을 수사하던 울산경찰서가 문의를 해왔고, 대구 동부경찰서가 제공한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을 살펴보니 동일인이더라는 것이다.  

동화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탱화 훼손은 그야말로 참혹했고, 쌍욕 중에서도 가장 추잡하고 치졸한 쌍욕을 휘갈겨 써놓았고, 방뇨장면 영상도 그대로 올라 있었다. 너무나 섬뜩하고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묘할 만큼 천지분간을 못하는 그 목사의 무지막지한 행패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몇 년 전 천주교 해미성지에서 접했던 개신교 목사님과 신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해미성지에 물을 길으러 갔던 나는 ‘십사처’ 앞을 차례로 순례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천주교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로 다가가 어디에서 온 어떤 분들이냐고 물었다.



▲ 솔뫼성지 / 영상관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당진시 우강면의 '솔뫼성지'를 찾은 태안군 노인복지관 '노인학교' 노인들이 영상관에서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보여주는 영상물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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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개신교 신자들이라고 했다. 경기도 안중에서 왔고, 천주교 성지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기도를 하기 위해서 왔노라고 했다. 나는 목사님을 찾아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신자들을 천주교 성지로 안내하신 개신교 목사님을 존경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목사님의 뜻에 호응하여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는 성도들께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해미성지에 관한 얘기를 간략하게 들려주면서, 천주교 신자인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태안의 백화산에 올라 태을암이라는 절의 대웅전 앞을 지날 때마다 부처님께 깊이 머리 숙여 예를 올린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박수를 치는 이도 있었다.

지난 7월 18일 나는 또 한 가지 특이한 체험을 했다. 태안군 노인복지관의 ‘노인학교’에서 시행하는 ‘역사탐방, 천주교 내포지방 성지순례’라는 이름의 행사에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태안군 노인복지관은 개신교의 한 교단인 구세군이 위탁을 받아 운영과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노인복지관의 노인학교에서 2012년 상반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교육을 마무리하면서 내포지방의 천주교 성지들을 순례하게 되었다고 했다.



▲ 신리성지 / 천주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다녀간 기거했던 당진시 합덕읍 '신리성지'를 찾은 태안군 노인복지관 노인학교 노인들이 김성태 신부로부터 신리성지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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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학교에 출강하면서 향토사를 강의하시는 전 태안문회원장 정우영 선생으로부터 노인복지관 노인학교의 천주교 성지 순례 계획을 전해 듣고 동행을 요청받았을 때 나는 내심 놀라고 감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꺼이 동행을 하기로 응낙을 드렸다.

노인학교의 천주교 성지 순례 행사에는 강사인 정우영 선생을 비롯하여 20여 명이 참가했다. 오후 일찍 출발하여 한국인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당진군 우강면의 ‘솔뫼성지’를 탐방했고, 프랑스 선교사로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생활했던 당진군 합덕읍 ‘신리성지’에 이어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의 생가지인 예산군 신암면의 ‘여사울성지’를 차례로 탐방했다.

솔뫼에서는 영상관에서 수녀님이 보여주시는 영상물을 보았고, 신리성지와 여사울성지에서는 담당 사제의 설명을 들었다. 일행 중에 천주교 신자는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었다. 대다수는 무종교인이거나, 불교와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천주교 성지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물들과 성물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성지담당 신부님의 강의를 열심히 귀담아 들으며 메모를 하기도 했다. 해서 내가 버스 안에서 보충 설명을 드리는 일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 여사울성지 /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의 생가지인 예산군 신암면의 ‘여사울성지’를 찾은 태안군 노인복지관 노인학교 노인들이 장동준 신부로부터 여사울성지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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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역 노인들의 학구열과 융통성을 지닌 사고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강사이신 정우영 선생의 개방적인 가치관이야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천주교 내포지방 성지들을 돌아보는 역사탐방 행사에 참가한 노인들의 진지하고도 품위 있는 모습은 참으로 고맙고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태안군 노인복지관의 노인학교 강사 정우영 선생과 노인 학생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지역주간지 <태안미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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