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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 예찬- '12.9.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6 조회수40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9.16 연중 제24주일 이사50,5-9ㄴ 야고2,14-18 마르8,27-35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 예찬-

 

 

 

 

 



오늘은 ‘믿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희망 없는 절망의 자리만 지옥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불신, 무신의 자리도 지옥입니다.

불신에서 파생되는 불화, 불평, 불만, 불목 등입니다.

 


믿음은 뿌리와 같습니다.

땅 속 깊이 내린 뿌리들 있어 하늘 향한 푸른 나무들이듯

믿음의 뿌리들 깊어 튼튼한 영육의 삶입니다.

믿음의 뿌리 없어 불안과 두려움이요 혼란과 방황입니다.


온갖 정신 질환도 믿음의 부재에서 기인합니다.

 

돈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 잃으면 많이 잃고 건강 잃으면 모두를 잃는 다는

말이 있는 데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믿음입니다.

정말 믿음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입니다.

한 번 잃은 믿음을, 신뢰를 얻기는 얼마나 힘든지요.


믿음의 뿌리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평초 같은 인생들도 많을 것입니다.

언젠가 사진에서 언뜻 본 옛 대통령이었던 김 영삼씨의

응접실 벽에 붙어있던 불신무립(不信無立)이란 글자가 생각납니다.

 


믿지 못하면 서지 못합니다.

믿어야 비로소 설 수 있습니다.

믿음 있어야 두발로 서서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 잃으면 인간으로서도 실격입니다.

믿어야 안정과 평화요 단순한 삶입니다.

살기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결국은 믿음 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무엇인가?’ 에 대해 집중적으로 나누겠습니다.

 

 

 

 

 



첫째, 믿음은 고백입니다.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고백해야 믿음도 살아납니다.

고백하라 있는 입입니다.

 


어제 수도원 설립 25주년 기념 감사제 중 음악회를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이

입과 귀와 눈의 중요성입니다.

 


말할 수 있다는 것,

들을 수 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의 하느님의 선물인지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눈으로 아름다운 사람들과 자연을 볼 수 있고

귀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입이 있어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새삼 행복도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찬미와 감사의 고백을,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고백을 하라 있는 입입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고백의 성무일도 기도와 더불어 성장 성숙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고백의 중요성을 절감한 주님은 제자들을 올바른 고백으로 유도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의 중구난방의 대답에 이어 단도직입적으로 제자들을 향해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주님은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주님의 정체와 더불어 믿은 이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스승이신 주님께 가장 멋진, 100점짜리 고백의 대답을 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에 내심 만족하시며

고난과 배척, 죽음과 부활의 여정에 이르는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의 믿음은 훌륭했지만

믿음의 공부는 아주 부족했습니다.

 

 

 

 

 



둘째, 믿음은 공부입니다.

 


고백만으로는 부족한 믿음입니다.

공부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도 평생공부의 대상입니다.

 


누구보다 수제자인 베드로의 믿음이 참 한심하십니다.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습니다.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베드로는 극구 주님을 만류합니다.

이사야서를 공부했더라면

이렇게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공부해요.

  공부란 생명이 존재하는 형식이에요.”

 


얼마 전 인용했던 구절이 참 좋아 또 인용합니다.


끊임없이 믿음 공부에 전념해야

제대로 성장 성숙하는 믿음이요 생명 충만한 삶입니다.

 

공부에 왕도나 지름길의 첩경은 없습니다.

주변 모두가 공부의 장이요 공부의 계기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믿음 공부 참 철저히 합니다.

스승이신 주님의 가차 없는 질책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충격 요법의 표현입니다.


애당초 타고난 공부인은 없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가는 사람입니다.

 

애초부터 수제자 베드로가 아니라

이런 수련을 밟아가며 믿음의 수제자가 된 베드로입니다.

 


진정 지혜로운 주님의 학인들은 모든 계기를 믿음 공부의 계기로 삼습니다.

이래야 전화위복입니다.

졸지에 사탄이라 꾸지람 들었던 베드로,

이제부터는 사람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을 우선 염두에 뒀을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실천입니다.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실천을 통해 검증되는 믿음입니다.

믿음 역시 추상 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동사의 실천을 통해 들어납니다.

 


수도원 설립 25주년 기념감사제 행사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일사불란하게 함께 일하는

수도형제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보석처럼 빛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고보 역시 실천으로 입증되는 믿음을 역설합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에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이런 진정성 없는 립 서비스의 말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묵묵히 실천으로 드러나는 믿음이 감동을 줍니다.

말없어도 이런 믿음의 실천 있어 저절로 이웃과의 원활한 소통입니다.

 


주님은 타고난 스승입니다.

꾸중으로 인해 위축된 베드로와 더불어 제자들과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믿음 실천의 핵심을 밝혀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대로 진정 믿은 이들의 삶을 요약합니다.


모두 동사의 실천이 따라 붙는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버리는,

제 십자가의 짐을 지는,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실천적 동사의 믿음이 믿음의 진정성을 보장합니다.

 

 

 

 

 



믿음은 고백입니다.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공부입니다.

공부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실천입니다.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끊임없는 믿음의 실천을 통해 하느님 반석위의 삶이요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린 확고부동한 정주의 삶입니다.

 


이런 확신에서 터져 나온 주님의 종의 고백은

그대로 예수님의 고백이자 우리의 고백도 됩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공부하며,

믿음을 실천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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