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7 조회수766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I am not worthy to have you enter under my roof.
Therefore, I did not consider myself worthy to come to you;
but say the word and let my servant be healed.
(Lk.7,6-7)


제1독서 1코린토 11,17-26.33
복음 루카 7,1-10

우연히 어떤 자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자신의 실수로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맘속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기도회를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회를 이끄시는 분께서 지금의 교통사고는 하나의 전조에 불과하고, 아들에게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얼마나 고민을 했고 또 불안하셨을까요? 자신이 낸 교통사고를 통해 큰 아픔을 겪었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더 큰 사고로 받을 고통을 생각하니 끔찍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기도회를 이끄시는 분의 말에 따라 어떻게 보면 무속적인 행동을 쫓아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매님께서는 교회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는 분이었고, 누가보기에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으로 평가받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큰 어려움에 겪다보니 무속적인 말에 흔들리고, 또 따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무속적인 말 한 마디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 분의 믿음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믿음이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실의 삶 안에서도 평화와 위로를 가져다주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동시에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보이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느님을 굳게 믿는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교도인 로마의 백인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믿음은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편하게 예수님을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을 찾아오시겠다는 예수님께 직접 오실 수고를 하실 필요가 없음을, 대신 한 말씀만 하시어 종을 낫게 해달라는 청을 드리지요. 그는 예수님을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는 생각에 예수님을 직접 뵐 수도 또한 죄로 가득 찬 이교도의 집에 감히 모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험을 빌어 자기 역시 주님의 부하임을 자처하며 말합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이 한 마디를 교회가 대대로 간직하여 미사 때마다 예수님을 성체로 모시는 모든 신자들의 입에 주님을 모시는 신앙고백의 말씀으로 귀중하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 이렇게 스스로 낮추면서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믿음은 어떤가요? 혹시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약한 믿음은 아니었을까요? 스스로 낮추면서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굳은 믿음을 주님께 청해야 할 때입니다.

 

좋은 면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쁜 일만 생기면 그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무라카미 하루키).



어제는 원종2동성당에 다녀왔습니다. 상가성당의 어려움. 잘 이겨내시길~~



인간의 배려와 주님의 배려

강의를 하러 여러 본당을 다니다보면 종종 신학교에서 같이 지냈던 선후배 그리고 동기 신부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중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신부님들도 많지요. 그런데 이분들이 기억하는 저의 모습은 거의 모두가 탁구 치는 저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농락당했다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사실 제가 남들보다 탁구를 조금 잘 쳤습니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조건으로 탁구를 치면 저한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손바닥보다 작은 탁구라켓을 만들어서 탁구를 쳤지요. 또한 그래도 제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몇 점 점수를 잡아주고 탁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을 농락하기 위해 그렇게 탁구를 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고 재미있게 탁구를 치기 위한 것인데 상대방이 느낀 것은 농락당한 기분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의 배려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스로는 배려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배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는 오해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진정한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는 참 배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께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믿음을 잘 간직해야 어떠한 고통과 시련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