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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18 조회수813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When the Lord saw her,
he was moved with pity for her and said to her,
“Do not weep.”
He stepped forward and touched the coffin;
at this the bearers halted,
and he said, “Young man, I tell you, arise!”
(Lk.7,13-14)


제1독서 1코린토 12,12-14.27-31ㄱ
복음 루카 7,11-17

어제는 전주교구에 가서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이 사실을 안 많은 분들이 제게 “신부님, 태풍 때문에 힘드셨지요?”라고 묻습니다. 많은 비와 거센 바람 때문에 인천에서 전주로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긴 강의를 듣는 분들도 제게 “신부님, 오시느라 힘드셨지요?”라고 물으시더군요.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나도 편안하게 전주까지 갔고, 돌아올 때에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운전한 것이 아니라, 고속기차를 타고서 다녀왔기 때문이지요. 기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잠을 잘 수도 있었고, 또 강의록을 점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풍으로 인한 많은 비와 거센 바람의 영향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바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 덕분에 제가 이렇게 편하게 전주까지 강의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다른 누군가 덕분에 이 세상을 즐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혼자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목적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자신과 관계가 없다면 억울한 사람들의 일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만의 목표와 혼자만의 삶에만 몰두합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억울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사람들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이기고 짓밟아야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항상 억울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편이셨습니다. 당시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셨다면 편안하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우리 역시 억울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다른 이웃이 필요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인’이라는 동네를 가시지요. 성경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마을입니다. 이는 곧 그만큼 조그마한 동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그마한 동네도 제외시키지 않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려는 예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시지요. 남편을 일찍 잃고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사는 불쌍한 여인을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세상이며, 나 역시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주님의 따뜻한 손길 역시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밥상을 잔칫상으로, 낯선 이를 친구로 만든다(멜로디 비티).



어제 강의 갔던 전주교구청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한 재능 있는 젊은 소설가가 금전만능주의사회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주지 않는 것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글을 들고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지요. 많은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다가 결국 소설을 출간해 주겠다는 출판사를 만났고, 그 뒤 이 젊은이의 소설은 평론가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게 되었답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였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면서 결국 책을 출판할 수 있었고 세상에 아들의 글을 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직 끝낼 세상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살아가는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 오셨고, 또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 역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또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의 일원으로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정겨운 말 한마디를 건네 보면 어떨까요? 이러한 작은 사랑의 행동들이 함께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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