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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1 조회수765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As Jesus passed by,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customs post.
He said to him, “Follow me.”
And he got up and followed him.
(Mt.9,9)


제1독서 에페소 4,1-7.11-13
복음 마태오 9,9-13

예전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아주 당황한 일을 겪었습니다. 글쎄 바짓가랑이 부분이 터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더군다나 제 숙소까지 다녀올 수도 없었습니다.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었지요. 누가 저의 터진 바짓가랑이를 보지는 않을까 계속해서 불안했지요. 또한 이렇게 불안해하는 저를 보고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모임이 다 끝났고 저는 함께 했던 동료에게 바짓가랑이가 터져서 곤란했음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고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료는 제게 “그랬었어? 나는 네 옆에 계속 있었는데도 몰랐네.”라며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도 있지요. 제가 바로 그 꼴이었습니다.

미국 코넬대 사회 심리학자인 토머스 길로비치는 젊은 대학생이 입기는 민망한 티셔츠를 실험대상 학생에게 입히고, 그가 만난 동료 대학생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자신이 어떤 셔츠를 입었는지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실험대상인 본인은 절반가량인 48% 정도가 자기 옷을 기억할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으니 그 티셔츠를 기억한 친구는 8%에 지나지 않았지요.

이를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합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자신도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에만 관심을 쏟으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을 보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또 그 기준으로 남을 평가 단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평가하고 있는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시의 큰 죄인이라고 불리는 세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느냐고 항의를 하지요. 만약 예수님께서 이런 스캔들을 가져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셨다면 이러한 행동을 절대로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이 아니라,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사랑의 기준에 의해 사람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행동하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는 어떤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라는 잘못된 조명 효과를 가지게 되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을 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큰 잘못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욱 좋다. 지혜로운 것은 좋다. 그러나 참는 것은 더욱 좋다(헤르만 헤세).



차가 너무 더러워 자동세차를 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우리 마음도 자동세차되면 좋겠죠?



최악의 길을 쫓는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네요. 어느 부유한 집에서 유아세례를 거행했습니다. 그래서 그에 앞서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곧이어 신부님이 오셨고 유아세례를 행하기 위해 아기를 데리러 부모가 아이 방에 갔다가 끔찍한 일이 목격하게 됩니다. 글쎄 유아세례를 받을 아이가 침대에서 질식사한 것이었지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이 불행의 발단은 어떤 사람이 코트 벗어놓을 곳을 찾다가 아이가 있는 줄 모르고 그 아이 위에 코트를 벗어 놓은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코트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곳이 코트를 놓는 곳인 줄로 알고 여기에 벗어놓았지요. 이렇게 쌓인 코트가 산더미처럼 되었고, 결국 그 밑에 깔린 아이가 질식사한 것입니다.

아이를 위한 날, 그러나 주인공인 이 아이에게는 가장 끔찍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역시 삶 안에서 혹시 이러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즉, 외적인 화려한 잔치에만 관심이 쏠려 주인공인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쫓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주님의 시선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선만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무서워 잘못된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결국 내게 가장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요?



"9월 21일 마태오축일"을 맞아
빠다킹 신부님의 영명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참된 사제로써 하시는 일들,
모두 이루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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