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묵상에서 관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들
작성자김은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3 조회수1,180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 (하권)중에서. (교회인가 받음)

3. 묵상에서 관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들
제가 기도를 설명해도, 기도를 하다 보면 딱히 어디가 관상이고 어디까지가 묵상이라고 구분되지 않는 기도가 더 많아요.
 그러므로 인위적으로 묵상과 관상을 나누려 하기보다 기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아요. 묵상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기도가 바로 관상으로 가는 시작 역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소통을 시작하게 됩니다. 소통은 말 그대로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보통 우리는 그냥 자기 할 말만 하고 기도를 끝냅니다. 묵상 기도는 성서를 묵상함으로써 비로소 하느님의 언어를 배우고,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에요.
또 그렇게 가기까지 우리가 잘 모르는 길도 있어요.
하느님께서는 영이시고 우리는 몸을 가진 사람들이므로 같은 가치 기준을 가질 수 없다는것을 우리는 알아요.
그래서 우리가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죄인 부분을 묵상을 통해서 직접 씻어 주신다고 볼 수 있어요. 묵상 기도가 우리가 들을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정화를 주시는 기도라고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보통은 이 정화가 어느정도 진행되어야만이 하느님을 들을수 있는데 이것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체험으로, 이정화는 하느님의 빛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 빛은 기도하는 내내 우리를 비추고 계시다는것을 알아요. 그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씻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기도할 시간을 내는 것과 이에 덧붙여 고백성사를 되도록 충실히 해야해요. 관상기도는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이 기도는 하느님께 속한 기도이며, 주님께서 주셔야만 할 수 있는 기도에요. 그래서 때로는 전혀 기도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에 하게 되는 기도입니다. 하지만 이 기도를 원하고 충실히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주시는 기도이기도 해요.
먼저, 묵상속에서도 마음밭에서 머물게 되면, 초기에는 마음밭에서 자기성장의 시간을 가게 되어요.
이것은 실제로 시간을 가지고 묵상의 과정을 하게 되면,
묵상은 성령께서 자기안의 무언가를 건드려서, 그것으로 자신을 비추게 되는데,그 비추어진 자신의 상태로 예수님안에서 머무는 시간을 거치게 되어요. 이렇게 머무는 시간 동안에 우리에게는 두가지 일이 있어요. 하나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을 받는 일이고, 다른하나는 주님의 요청을 받는 것이에요. 우리는 주님의 요청을 통해서,  교회에 흐르는 일치된 진리로 인도되어요.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상이라고 말할수 있어요.
그런데 마음밭이 생겼다고 해서, 바로 주님의 요청으로 가는게 아니라, 마음 밭안에서 충분히 성장하지 않으면
이 주님의 요청이 받아지지 않아요.  우리가 아직 받을 힘이 없어서에요. 우리가 지나 온 길을 더듬어보면, 묵상들이 다 자기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할거에요.  마음 밭안에서도 한동안은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찾아서 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아요.
마음 밭안에서, 주님과 함께 성장을 해가면서, 이렇게 주님의 요청이 받아지기 시작하면, 묵상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요. 그래서 기도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현존속으로 가게 해주고, 그렇게 되면, 기도 속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다고 보면되어요. 그러니까 관상에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는 시간들이 있다는것이에요.
 
그러면 그다음의 관상기도를 살펴볼께요.
관상기도는 묵상 기도와 달리 그 말씀 가운데에 그냥 머물러 있게 되는거에요. 아무런 생각의 움직임이 없어지는거에요.
이렇게 기도가, 어느 정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말씀을 생각할 수가 없어지는 시기가 와요. 말씀에 집중을 해도 마음이 조용히 침잠되면서 생각이 마음으로 안 들어와요. 보통 꾸준히 기도한 지 4-5년이 되는 시기에 오는 것 같은데, 족히 10년은 하지 않나 싶군요.
이때에는 생각하는 대신에 자신이 기도로 선택한 모든 것이 유기적인 인격을 갖추어서 예수님의 현존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것에 바로 예수님의 현존속에 머물게 되어요. 자기가 기도 주제로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가령 사람이면 사람, 성서 말씀이면 성서 말씀, 생활이면 생활로 선택했다면 그때까지 그것은 자체로서의 의미만 갖고 있지만 그 주제들을 가지고 기도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들이 바로 예수님의 현존으로 직결되면서 그 모든 일이 바로 예수님 현존 자체가 되는거에요.
관상의 목적은 예수님이므로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께로 문을 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말씀 가운데 그냥 머물러 있게 되면,
자기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현존이 되어서 주님과 일치되는 마음을 받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 생각을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생각에 걸리게 되지도 않거든요.
또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하느님의 질서에 대한 안목을 받았기 때문에 생활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가게 되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이 없어도, 몸이 먼저 하느님 일을 하고 있게 되어요. 마음을 들여서, 애쓰지 않아도 몸의 실천이 그냥 주어져 있다고 보면 되어요.
그래서 기도는 그저 하염없이 흘러가는 배 안에서 현존 안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바라보고 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나를 이끄시는 하느님만이 주제가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물이 될 뿐입니다. 고요함과 평화 속에 있게 되어요. 이 고요함과 평화속에 머물러지는것은 생활과 믿음이 일치되는 것에 영향을 받아요.
그리고 하느님께 온전한 의탁으로 기도가 관상이 되기 시작하면 언제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기도가 가능해져요.
일을 하면서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거리를 걸을 때에도 무한한 신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은총속에 있게되어요..
관상 기도는 가슴으로 하게 되는 기도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열매로 가슴이 따뜻하게 사랑으로 넘쳐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받게 되며 그것을 실행할 힘도, 기도속에서 주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머리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묵상) 가슴은 느낀다, 그 느끼는 것을 할 수 있는 은총이 있다 (관상)라고 요약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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